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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여진 Mar 30. 2024

나의 퇴사 일기

2011년 2월 21일.

나는 한 항공사의 객실승무원으로 입사했다. 

어렸을 때부터 승무원이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친언니가 승무원이었고, 대학 졸업 후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고, 그저 안전한 학교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내가 직접 번 돈으로 더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대학 졸업반일 때 가벼운 마음으로 승무원 공채에 지원을 했다. 딱 2년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사회생활도 해보고 2년 후에 대학원에 가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 2년이 지난 후에 나는 대학원이 아닌 결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2년은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그 사이에 5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고 여행도 하고 사회경험도 쌓았으나 이제 막 일이 손에 익어 일하는 재미를 붙여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처음 입사해 어리바리했던 경험도, 적성에 안 맞으면 빨리 그만두라는 한 부팀장님의 뼈 때리는 조언도 들었지만 나는 어찌어찌해서 여자 군대라는 승무원 생활에 내 방식대로 적응을 한 뒤였다. 시간은 더 쏜살같이 흘러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 싶었을 때는 첫째를 임신했고, 임신과 출산, 육아로 정신이 없는 와중 다시 둘째를 임신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로 4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진 덕분에 나는 다시 복직을 했을 때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고 감사하게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정신없이 비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놓치고 다시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을 하는 걸까 고민이 들던 시기에 거짓말처럼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나는 잘 다니던 회사가 휴업을 하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졌다. 나름 대기업을 다니고 있던 나는 고용 불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임신과 육아로 4년을 쉬면서도 늘 든든하게 나의 빽이 되어준 회사가 있었는데 이 전염병으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코로나가 준 3년이라는 시간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바로 이제 막 4살, 5살이 된 우리 아이들을 내가 온전히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어느덧 아이들은 커서 작년에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3월이 되었을 때 나는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다시 썼다. 여차저차 가족 돌봄 휴직까지 끌어다 써서 여름방학 때까지 아이들을 더 돌보다가 다시 작년 9월에 복직을 했다. 그리고 올해 3월에는 둘째마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정말 아이들이 다 컸구나, 3학년까지만 버티면 이제 아이들이 엄마 찾지도 않는다, 아이들 학원비가 얼마나 많이 나가는 줄 아느냐, 조금만 더 버텨라... 요즘 매일같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제 와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다들 대체 왜 그러냐며,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려 하느냐며 말린다. 돌아보니 어느덧 13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내 기억은 열심히 비행한 기억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운 기억이 더 크다. 회사에 몸담은 13년 중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4년, 코로나로 3년을 거의 가정주부처럼 아이들과 살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진짜 워킹맘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시댁, 친정 부모님 도움 없이 남편과 오롯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찐 워킹맘이기도 하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어영부영 정년까지 비행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한다. 아직도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그냥 비행을 계속하면서 회사가 주는 복지혜택을 누리며 여행 걱정 없이 그렇게 살까 싶기도 한다. 4인 가족이 된 이후로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서 한 번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적당한 월급 받으며, 가끔 해외로 가족여행도 가고, 대기업 다닌다는 안정감으로 남은 내 인생 그냥 그렇게 살까 싶다가도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든다. 


그까짓 여행 안 가면 그만이고 직원티켓 쓰느라 마음고생하는 거 생각하면 그냥 내 돈 내고 맘 편하게 여행하고 싶기도 하다. 막상 내가 비행을 하고 일을 하는 그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든데, 그 이외의 것으로 보상받으며 이 시간을 버티는 것은 한 번뿐인 내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그것들을 무시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놓기가 아쉬워서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10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선배를 보았을 때는 대체 얼마나 무능하길래 아직까지 회사에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10년 차가 되고 보니 10년 동안 회사에 붙어 있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은 이렇게 좋은 회사를 어떻게 그만두나 싶다가도 다시 이놈의 회사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내가 후회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느 길도 정답이 아니다. 퇴사를 하든, 회사에 붙어있기로 하든 어떤 길이든 내가 선택한 그 길을 정답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므로 선택은 내가 내린다. 그런데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한다. 글을 쓰면서 내 머릿속을 정리해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론을 내려고 한다. 그렇게 내 인생의 나만의 정답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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