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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여진 Apr 03. 2024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들

사람

내가 회사를 다니며 배운 게 있을까,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12년을 몸담았던 곳이니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회사가 그렇듯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니 당연히 이윤추구와 비용절감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런데 내가 있었던 곳이 객실이었으니 그 특수성 덕분에 돈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참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다양한 국적과 나이대의 승객에서부터 같이 일하는 동료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비행기에서 만났고 해외에서는 다시 내가 호텔의 손님이나 그 나라의 여행객이 되어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 만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천상 mbti i인 내가 그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을 했다니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한데 또 i였기 때문에 남의 말,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고 무던하게 사람 대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입사해서는 승객이 정말 힘들고 무서웠다. 아무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고, 회사가 원하는 서비스 방향이 명확했으며, 나는 경험이 없었기에 무서울 수밖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일에 사과를 해야 함은 물론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으며 어디서든 눈치를 보아야 했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은 내가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회사생활이고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며 말 그대로 나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므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원치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방도 결국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상대방도 나이스한 리액션을 보내줄 것이고, 내 마음이 얼음장 같다면 상대방도 결국 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할 것이라는 것까지. 물론 나라고 해서, 상대라고 해서 항상 나이스하고 항상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런 날에는 그런 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도 허용하고 조금은 까칠한 상대방도 그대로 허용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었다.


기내에서 원하는 식사를 먹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원하는 식사가 떨어졌다고 해도 웃으며 괜찮다고 아무거나 달라고 하는 사람도,

원하는 자리에 앉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자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오케이 해주는 사람까지,

모두 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이유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은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지게 되었다. 한 인간을 낳고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어떤 정성을 쏟는지,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놀아주면서 아이에게 부모가 쏟는 사랑과 시간을 직접 경험해 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승객 하나하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자 딸이었겠지, 그 부모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겠지, 생각하니 승객을 무서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데, 내가 정말 똑같이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게 맞을까? 기내에서 일등석, 비즈니스석, 일반석 승객 모두를 동등하게 생각하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게 맞나? 또한 내가 받는 인종차별은 기분 나쁘지만 막상 나는 동남아인과 서양 백인을 정말 똑같은 마음으로 같은 외국인으로 보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도 그동안 쌓인 교육과 경험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기내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그들이 낸 비용이 다르고 그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나 서비스 용품이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으로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더 낸 사람들은 당연히 차별화된 서비스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정당하게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니 고객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서비스는 각자의 클래스에 맞게 제공하고 그 사람에 대한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고 봐야 하는 거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무 자르듯 되지가 않는다. 자꾸 보이지 않는 서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서비스에서만 더 중요하다는 것이 결국 안전과 그 사람의 가치로까지 자꾸만 연결이 되려고 한다. 계속해서 그 연결을 끊어내고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이 비단 승객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승객과 승무원,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에 대해서도 모두 일관되게 적용되면 좋을 텐데 아쉬운 순간들이 종종 있다. 승무원보다는 승객이, 객실보다는 운항이 더 중요하구나, 그들이 더 가치 있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 좌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   

나도 결국은 존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도 승무원이 있어야 비행기를 띄울 수 있고 승무원이 있어야 승객을 태울 수 있으니 승무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지만 왠지 내가 경험적으로 느끼기에는 승무원은 쉽게 대체될 수 있으니 개개인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존중받지 못하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결국 다 사람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나를 살리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끔찍한 내 새끼도, 나도.

백 년도 못 살고 먼지로 사라질 사람.

그러니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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