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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니 May 13. 2021

어쩌다. 친구

 살다 보면 "아. 얘라면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를 하나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고? 그럼 아직 못 만났거나 만났는데 모르는 걸 수도 있다. 뭐... 언젠가는 생기겠지?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친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내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전 글에도 이야기했었지만 나는 거의 히키코모리나 다름없었다. 군대와 대학교 5년을 겪고 나서 사회에 나와서 지금의 성격과 비슷해졌던 것이고, 군대 가기 전까지는 친구라고 말할 친구는 없을 정도로 혼자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그나마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도 대학교를 가며 점점 소심 해지는 내 성격과 그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내 행동 덕분에 점점 멀어졌고, 몇 명 있던 친구들도 지금은 결혼하고 해외에서 지내고 있기에 연락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군대를 전역하고 바뀐 성격으로 만나게 된 친구들이 현재 제일 친한,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사실 어떻게 친구가 됐냐고 물어보면 지금도 잘 모르겠다. 1학년 때는 어느 애들이나 그러듯이 본인과 잘 맞는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서 다니기 시작했고 그 애들은 무리의 주류를 이루는 존재였고 나는 그저 같이 다닐 사람이 필요해서 겉돌며 다니는 그런 부류였다. 그때도 친하긴 했지만 내가 모든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냈기도 했고 지금처럼 거의 매일 붙어 다니지도 않던 그런 때였기에 친구라는 단어로 묶어놓을 그 정도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애들이 각자 군대를 다녀오며 복학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에 술 먹고 학교 앞 PC방에서 밤새 놀고 다음날 수업에 들어가서 뻗어있다가 또다시 술 먹으러 가기를 반복했다.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지만 같이 있었기에 즐거웠고 같이 있었기에 편히 놀 수 있었고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다지 좋은 성격은 아니다. 나도 알고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친절하지도 않고 틱틱거리며 곱게 말하지도 않으며 장난기만 많은 츤데레적인 성격이기에 곁에 있으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런 성격을 감당하면서도 내 곁에 있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가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그 녀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 이야기는 비밀이다. 곱지 않은 내 성격에도 내 곁에 있어주고 낯 가리는 성격도 변하게 만들었으며 많은 부분에서 내게 양보해주는 그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으며 까불거리며 장난치기만 좋아하고 성격은 나쁜 놈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여자 친구와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도 보고,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먹기도 하고, 해외와 국내여행을 함께 했으며, 밤새 게임을 하기도 했다. 나는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짧지만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내 성격을 바꾸고 취미를 바꾸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 줬던 소중한 세 가지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녀석들은 그중에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신사의 품격이다.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의 네 명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무려 9년 전에 나왔던 꽤 오래된 드라마로 네 친구들이 겪는 로맨틱 멜로드라마이다. 드라마와 책으로 본 횟수를 꼽자면 10번이 넘는데 아직도 가끔씩 보기도 하는 최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문구가 있다면 바로 극 중 최윤(김민종)의 아내가 죽으며 다른 세 친구들이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달려가서 장례식을 같이 해주는 장면으로 지금도 보면 울컥할 정도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거기서 이런 말이 나온다.


 " 상주가 차는 완장의 검은 두줄은 직계 가족을 뜻한다. 한 줄은 친구나 지인이다. 팔에 한 줄, 가슴에 한 줄 두 줄을 긋고 서 있어준 놈들... 내 인생이 만난 제일 독한 이별과 내 인생이 만난 최고의 행운들... "


 프롤로그에 나오는 짧은 장면이지만 네 친구들의 우정에 대해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장면이기도 하다. 내게는 이 녀석들이 그 정도의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녀석들이기에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놈들이다. 지금은 서로 먹고살기 바빠 예전처럼 거의 매일 붙어있고 술 마시며 놀지는 못 하겠지만 가끔씩은 만나서 놀자... 내 인생이 만난 첫 번째 행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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