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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나야 Mar 30. 2020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칠레 지참대 '외국군 장교의 날'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칠레 지휘참모대학에서 나의 역할은 우리나라를 알리고 우방국을 더욱 늘리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지휘참모 교육과정 중 9개국의 외국군 장교들은 국가별로 자기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할당 받는다.


2010년 대한민국은 남미에서 드라마와 가요가 막 알려지기 시작한 초창기였다. 그래서, 일부 마니아 층에서만 K-팝을 부르고 춤을 따라 추는 정도였다.


칠레 엘리트 계층인 장교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인천 상륙작전"


"North Corea"


"South Corea"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들이 육군대학에 선발되기 위해 공부했던 전쟁사에 포함된 아시아 나라 중 하나 일뿐이었다.


학교장이 소개하는 동안 콩닥콩닥 긴장 만땅!!

평생 이렇게 열심히 프리젠테이션을 준비 해 본 적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스페인어로 원어민들 앞에서 설명을 해야 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번역하고

PPT 작업하고

동영상 편집하고

발표 대본 쓰고

발표 대본 외우고

원어민에게 체크받고...


드디어 칠레 학생장교들 포함, 전 교직원들 앞에서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국방, 경제 등에 대해서 약  2시간 정도 소개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호기심이 좀 유별난 동기들 외에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입교하고 말 한마디 안 해본 동기들도 있었다.


또, 중남미 남자들 은근히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다. 일부 동기들은 여자가, 그것도 아시아티카(아시아 여자)가 자신들과 동일한 교육과정에서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존심 상해하는 XXX가 있다는 얘기를 동기 부인들이 전해줬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마초(Macho)'

'마치스모(Machismo)'


아무튼 모든 동기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미군, 독일군 장교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훗 날 미국, 유럽 등으로 가족과 함께 해외 파견을 꿈꾸며 또는 언어를 연습하기 위해 거의 그 들과만 친선을 도모하고 있었다.


칠레가 우리에게 그저 남미에 길게 생긴 국가 일 뿐이 듯, 대한민국도 그들에게는 그저 아시아에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 여전히 위험한 나라 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국경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교전들이 늘 있을 것이고, 당연히 내가 교전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를 그렇게 위험한 국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침 그 해 북한이'천안함 피격', '연평도 도발'을 일으키기도 했으니 외국에서 보기에는 그럴 수 도 있겠다 싶다.  


반면, 당시 칠레 동기들 10명 중 4명은 기아, 현대차를 몰고 있었고, 가전제품 60%는 삼성과 LG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Made in Korea"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기들이 많았다. 당연히 일본 제품이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 대기업 마케팅이 그러했던 듯...)


대한민국에 대하여 프리젠테이션 중


경청하고 있는 지참대 학생장교 및 교직원 일동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나는 학교에서 더욱더 유명인사가 되었다.


"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였어!"


갑자기 급 관심을 보이며 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니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등 프리젠테이션 이전과 이후 지참대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주말과 공휴일은 동기들과의 약속으로 하루도 쉴 날이 없었고, 시골 고향으로 초대받아 극진 한 대접을 받는 등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 주었다.




지참대 수업은 9시에 시작해서 11시 30분 쉬는 시간이 한 번 있다.  이때 우리들은 매점에서 커피와 쿠키, 샌드위 등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다. '아유야'라는 딱딱하고 둥글게 생긴 빵에 아보카도를 으깨어 크림처럼 발라 먹었던 그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 끝나면 오후 2시까지 수업이 이어진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잡담 끝에  


"뭐? 대한민국 GDP가 세계 11위라고?"


"말이 돼? 칠레가 몇 윈데?"


"대한민국이 11위야?"


"안(내 이름 발음이 어려워 나를 이렇게 불렀다)이 스페인어를 잘 이해 못했나 보지."


라며 내기가 붙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대한민국 11위'


'칠레 44위'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수업 시작 종도 안 쳤는데 각자 커피와 아유야 샌드위치를 챙겨 교실로 향했다.

                                 


해외에 나가면 갑자기 애국자가
 되는 것 같다.

태극기를 달고 제복을 입으니
그 마음이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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