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은 했는데 배란은 안 했을지도 모른다?
무배란성월경
고프로락틴혈증
월경은 했는데 배란은 안 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도 아니고. 난임병원 두 번째 방문날. 2주 전에 하고 온 피검사 결과를 듣고 나는 내 난소에게 실망했다. 우리 매달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월경했잖아. 너 나에게 이런 배신감을 줘도 되는 거니?
내가 사는 곳은 서귀포. 이곳에서 제주도 '유일' 난임병원을 찾아가는 데는 차로 약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놀랍게도 제주도에 난임병원은 단 한 곳뿐이다. 최근 두 곳이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새로 생긴 병원 원장님께서 별세하시어 폐업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걸리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부랴부랴 도착한 병원. 어라? 오늘은 눈치게임에 성공했는지 대기자가 아무도 없었다. 혹시 벌써 점심시간이 돼 버린 건 아닐까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아직 대러 간 남편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나는 진료실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피검사 결과가 적힌 문서를 보여주며 빠르게 설명해 주셨다. 난소나이 24세, 갑상선 호르몬 정상(이미 갑상선항진증 약 복용 중), 다른 건 모두 정상이거나 좋음… 그러다가 문서에 빨간 글씨가 보였다. 올 것이 왔구나. 아마 이게 문제가 되겠거니 싶었다.
프로락틴 수치가 높습니다. 이 수치가 높으면 임신을 방해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프로락틴이라는 단어를 못 알아 들어서 네? 하고 되물으니 유즙분비호르몬이라고 다시 말씀해 주셨다. 모유와 관련돼 있다는데 이게 왜?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이 능숙한 간호사 님이 나를 초음파 보는 곳으로 안내했다.
병원에서는 난임검사를 위해 생리 2~3일 차 때와 배란일에 병원에 방문하라고 했다. 2주 전인 월경 2일 차에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했다. 그리고 2주 뒤인 오늘이 배란예정일이라 병원에 방문한 거였다.
초음파검사는 아직 어색하다. 언젠가 익숙해지겠지. 초음파를 보면서 설명해 주시는데 난포가 덜 자랐단다. 배란일에 난포 크기가 20㎜는 돼야 하는데 15㎜ 밖에 안 자랐단다. 그래서 일단 이번 달은 지켜보는데 덜 자란 거면 그나마 다행이지 아예 안 터지고 지나갈 수도 있단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매달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월경을 해서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몸이 나를 속인 거였을지도 모른다니! 그간의 월경과 고생을 생각하니 내 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난소 너 실망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병원을 나와 온라인으로 찾아보니 이걸 무배란성월경이라고 부른단다. 배란을 안 했는데 왜 월경을 하니. 정말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다(?). 그런데 증상이 있었다면 더 빨리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내 몸도 나를 안 돕는다.
2주 전에 작성한 '난임검사를 받고 왔다' 글을 시작으로 어쩌면 난임 시리즈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글이 난임 시리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지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자연임신 시도 6개월 차라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난임병원을 찾았다. 난임은 만 35세 미만은 1년까지, 만 35세 이상은 6개월까지 자연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만 30세, 31세로 나름대로 젊은 부부이지만 혹시나 싶어 빠르게 대응하고자 병원을 방문했다.
어쨌든 현재로서 난임은 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의심되는 원인을 찾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속 시원하다.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고통받을 때보다는 문제가 분명해진 것 같아 훨씬 낫달까. 이번 달에 수확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이번 달은 우선 배란일 2~3일 후에 관계를 시도하고 지켜본 다음, 다음 달부터는 필요한 처방을 하기로 했다.
본인처럼 매달 규칙적으로 월경을 하는 사람의 경우 난임검사를 하기 전에는 문제 여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연임신을 시도한 지 1년이 되지 않았더라도 혹시 임신이 늦어질까 걱정된다면 빠른 난임검사를 추천한다. 본인처럼 막연했던 문제가 분명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