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이미 A2반에 들어갔을 때부터 자존심이 상했었다. 도통 늘지 않는 불어실력이지만 월반하리라- 다짐하며 숙제를 모두 해갔다.
머피의 법칙 [Murphy's law]이라고 모두 알 것이다. 10개의 문제 중 9개는 풀고 나머지 1개는 도저히 몰라 남겨두면 꼭 발표 시간에 내가 걸리는 것이다. 자신 있게 한 문제만 남겨놓고 모두 풀어 수업에 참여하고 기대하며 발표가 시작되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그럼 딱! 내가 안 푼 그 문제가 내 차례인 것이다. 그날도,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정말 열심히 숙제했는데 모르는 문제를 남겨두면 꼭 내가 걸리길 여러 번....
갸우뚱하는 선생님의 표정에서 불안함을 느꼈고 결국 나는 한 달 만에 반이 내려가 왕초보 A1반이 되었다. 그 문제만 빼고 다른 건 모두 알고 있단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펑펑 울며 부모님께 전화를 하였다.
당시엔 전자사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종이 사전으로 공부했다.
언제나 강인한 큰 딸의 펑펑 우는 소리를 조용히 듣던 엄마는 말했다. "너무 힘들면 돌아와"
아?! 돌아오라니!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오기가 더 생겼다. 나의 강한 자존심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내 의지로 이곳에 와 있는 건데, 이렇게 힘든 것 또한 유학을 오기로 결정한 나의 몫이다. 그날로 나는 더더욱 잘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나 자신을 알라' 나의 경우, 스스로 지키는 약속이 자꾸 무너졌다. 오늘은 몇 시간 공부해야지, 오늘은 몇 단어만 외우고 자야지.. 하다 어느새 고꾸라졌다. 때문에 이런 나의 성격을 이용해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억지로 나를 밀어 넣었다.
1. 돈을 쓰다.
오전엔 어학교에 가고 오후엔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과외를 하게 되면 일대일로 선생님이 나를 봐주시기 때문에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한다. 예습, 복습도 철저하게 했고 문법을 실제 활용해 보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써 모르는 표현은 메모하며 고쳐갔다. 내주시는 숙제도 충실히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안 해가면 돈이 아까우니까'
또한 성격이 소극적이라 어학교에서는 모르는 게 있어도 질문을 못했다. 수업 흐름도 깨지고 모두가 나를 주목하니까. 성격 탓에 일대일로 하는 과외 방법이 나에게 딱 맞았다. 나중엔 프랑스인 회화과외도 시작하였다. 어학교에서는 일주일에 2번, 한 시간 정도씩만 자유회화 시간이 있었는데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과 모두가 왁자지껄 맥락 없이 떠드는 수업이라 만족도가 떨어졌다.
프랑스인 회화 과외를 시작하며 대화 주제를 내가 정하고, 정보도 미리 찾아가서 선생님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때론 정치적이기도 했고 예술분야를 이야기하기도 하였으며 나중엔 프랑스 미술 학교 입학시험을 위한 나의 작품 소개와 깊이 있는 질응답 하기 등으로 과외 시간을 활용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