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 O MA BINCH
따사로운 햇볕이 고개를 들어 어느덧 여름의 문턱에 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6월에 학기가 끝나고 3개월간의 긴 여름방학을 앞둔 프랑스 미술 학교의 마무리는 어떨까?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 위해 모인 모든 학생의 즐거운 축제, 6월 22일 금요일에 가진 마지막 수업을 따라가 보았다.
밤 8시부터 시작되는 축제의 대미는 학생들의 그룹 퍼포먼스이다. 공연을 이끌어가는 인원은 퍼포먼스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외부 아티스트 한 명인데, 음식물을 주제로 한 이 수업은 항상 재미있는 음식 관련 퍼포먼스를 선보였었다. 마지막 특별 수업을 위해 선택한 주제로는 “빵”이 채택되었다. 프랑스 인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식 빵. 그 평범한 소재로 어떤 재미있는 공연이 펼쳐질지 흥미진진하였다. 당일 오전 10시부터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학생들의 표정엔 1년여 동안 갈고닦은 퍼포먼스 실력을 항상 학교에서 얼굴 맞대는 친구들 앞에 선보이는 그 떨림과 긴장이 서려 있었다. 축제를 맞이하는 즐거움과 긴장감 속에 바삐 움직이며 각자 맡은 바를 수행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가 되는 “빵”의 반죽이었다.
미술 학교 수업에서 빵을 반죽하는 것은 생소한 것이지만 프로의 정신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만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 일렬의 과정 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주 공장을 방문하여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맥주를 생산했고 잼과 버터 또한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 1년여간의 수업에서 그들은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즉 손쉽게 슈퍼와 빵집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을 그렇게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세와 그 과정 또한 미술 행위라는 것을 배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수업을 위해 매주 각자 다른 모양과 맛, 색의 빵을 구워왔고 수업 시간에 함께 시식하며 마지막 날에 선보일 빵을 엄격히 선발하였다. 그 노력의 결과를 오늘 선보이는 것이다. 그 특별한 수업을 위해 둘셋씩 짝지어 거대한 빵 반죽을 만들었고 2시간 동안의 발효 시간을 갖은 이후 반죽을 쪼개고 쪼개 모양을 만들어 작은 빵을 만든다. 한나절을 꼬박 빵 반죽에 힘써 약 150명분의 빵을 10여 명의 학생들이 만들어냈다. 빵을 구울 화로 또한 디자인하여 특별 제작했고 퍼포먼스 중 입을 옷과 장식, 음악 또한 제작하였다.
의상으론 옛날 프랑스 빵 장인들의 유니폼을 본뜬 하얀색 원피스인데 여성의 상체를 한껏 강조한 옷이다. 빵의 모양 또한 여성의 가슴 모양을 본 따 둥근 원형으로 만들었다. 그 상징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어릴 때 엄마의 모유를 먹고 자란다. 그 모유를 품은 풍만한 가슴은 여자만이 가진 유일하고 아름다운 신체의 곡선이며 자식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를 의미한다. 빵을 사랑하는 프랑스인. 그리고 매일 끼니마다 빵을 소비하는 프랑스인. 그들은 모유를 뗀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빵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인에게 빵이란 단순히 음식물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주식이며 그들의 상징이자 자랑거리이다. 행사의 이름 ‘MICHE O MA BINCH’ (둥그스름한 큰 빵과 자신의 가슴을 뜻하는 속어를 이용한 말장난) 알 수 있듯이 둥근 빵과 가슴의 연관성을 재미나게 표현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또한,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아쉽게도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은 그동안의 준비 과정엔 참여할 수 있지만, 주요 퍼포먼스엔 참여하지 못하였다. 저녁 8시,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고 사람들은 분주해지며 이윽고 학교의 학생들이자 오늘만큼은 축제의 손님들이 입장하였다. 직접 만든 유기농 맥주를 입구에 놓고 한 사람씩 들어올 때마다 맛볼 수 있게 하였다. 주인공인 빵은 사람들 앞에서 화덕에서 바로 꺼내졌고 퍼포먼스 시작을 알리며 칼로 잘렸다. 모두의 환호성 속에 마지막 축제가 시작되었다.
흥겨운 음악 속에서 가지런히 놓인 빵들을 하나씩 옮기며 산처럼 쌓고 하나씩 올려질 때마다 울리는 환호성을 들을 수 있었다. 각자 하나씩 빵을 집어 버터와 잼을 발라 먹었고 서로 빵을 나누며 먹여주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모두 한마음으로 1년간 진행된 수업 동안 오직 이날을 위해 끈끈한 동지애와 책임감으로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이끈 학생들에게도 박수를 보내며 축제를 즐겼다.
독특한 프랑스 미술 학교의 축제는 이처럼 한국의 그것과는 판이하였다. 한국처럼 대학 축제라는 문화가 없는 이곳에선 연예인이 아닌 학교 학생들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부르며 축제 또한 수업의 연장선으로 퍼포먼스와 무대, 전시를 직접 꾸며 1년간 닦아온 자신의 기량을 뽐냈고 그동안 수고한 자신을 응원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평소엔 어울리기 힘들지만 이날만큼은 학년 상관없이 전교생이 모두 모여 어울리며 신입생들에겐 조언을, 졸업생들에겐 응원하며 값진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시발점을 마련해 주었다. 프랑스 미술 학교의 마지막 수업은 이처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가는 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