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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Jun 29. 2022

문화의 역사 (1)

사람의 모순

의문과 허구가 창조하는 세계들은 선사와 역사 시대에 걸쳐 지구적 현실을 채웠다. 또한 의문이 깨우치는 놀람과 허구가 만드는 대답은 언제나 우리 삶을 구성했다. 각 세계의 사람들이 시대에 걸쳐 남겼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이러한 추리는 좀 더 분명해진다.


가장 먼저 집단을 이루고 정체성을 유지했던 선사(先史)의 공동체에서는 어디든 다양한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들은 각종 은유나 상징 아니면 신화의 형태로 공동체와 함께했다. 의문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 있었고, 공동체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공동체는 그들 나름의 대답을 찾았으며, 그 답을 후세에 교육하고 계승시켰다. 더러 이들 공동체에서 대답에 다가갈 적성을 지닌 구성원은 소수였고, 이들에게도 대답으로 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했다. 어쨌든 선사를 살았던 여러 공동체는 의문에 대한 탐구를 멈춘 적이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부족함이 없는 답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역사 시대 이전엔 질문과 대답의 순환이 공동체가 삶을 영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었다. 그러나 문화의 등장 이후로 이러한 순환도 끊어져 공동체의 해체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문화가 정확히 언제 등장했는지 모르지만, 이것에 의해 순환의 리듬은 최초의 순수한 다양성을 제거당하고 점차 단일함을 지향하는 사고방식을 강요받았다. 이는 순환의 리듬 그 자체였던 각 공동체의 생존도 취약해짐을 의미한다. 문화는 공동체로부터 질문할 권리를 빼앗았다. 물론 공동체는 문화의 억압에 저항했지만, 문화체제가 획득한 단일성의 권력 앞에 점점 무력해졌다. 결국 공동체는 질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질문의 재생산이 가능하지 않게 되자, 공동체는 무너져 내렸다. 이제 그들은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질문만을 던지게 되었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집단은 점점 줄어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통조차 제대로 지키기 어려워졌다. 지구를 활보했던 공동체들이 서서히 소멸하거나 지리멸렬 해졌다. 문화체제가 들어선 곳엔 어김없이 공동체의 몰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공동체로부터 의문을 빼앗은 문화는 지구적 현실의 여건에 맞춰 문화권을 형성하였고, 이것들은 지역에 따른 이점의 정도에 따라 문명 혹은 민족을 건설하였다. 더불어 각 문화권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리고 오랜 기간 역사 시대를 차지했던,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구도가 자리잡았다. 또한 질문의 양상은 공동체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는데, 이전에는 적성이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권력이 중요해졌다.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지배자들이 모든 의문을 틀어쥐고 피지배자들을 착취하던 시기가 꽤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질문할 권리를 부여했으며, 또한 자신들만의 대답을 강요했다. 


  그들은 존재(사람은 왜 있는가?)의 질문에 대한 자신들의 대답에 보편이란 딱지를, 삶의 가치(사람은 무엇인가?)엔 규범이라는 또 다른 딱지를 붙였다. 피지배자들은 보편과 규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보편과 규범을 수호했다. 지배자들은 자기네 문화권이 주장하는 보편과 규범을 전파하기 위해 다른 문화권과 경쟁했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문화권의 경쟁 속에서 지배자들이 정답이라 주장했던 보편이나 규범은 역사의 단계가 근현대로 접어들자 점차 권위를 상실했다. 지배자가 주장하고 피지배자가 순응했던 보편과 규범은 근현대에 등장한 대답과 대결하여 패배하였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들은 각자의 삶에서 이것들을 지켜내려 했으나, 새롭게 등장한 체제로의 권력 이양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지배자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힘을 상실하자, 권력은 근현대에 영향력을 키워간 다른 체제로 넘어갔다. 새로운 체제는 이전에 있었던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지구 전체로 뻗어나갔다. 또한 근현대의 체제는 과거보다 한층 지역적인 색채를 벗어던지고 단일한 세계로 변해간 것이다. 인류의 번영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떤 체제도 근현대에서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들을 돌이켜 보면 오히려 체제의 효능을 의심하려는 태도가 이상해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이들 체제의 특징은 자신의 질문과 대답이 삶의 획기적인 개선과 인류의 전폭적인 개량을 위해 쓰일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근현대의 체제에 의하면 의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이러한 의문들은 조만간 자신이 제시한 해답에 의해 끝장날 것이고, 의문의 종말은 지금 이 체제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의문의 구체적인 형태를 삶의 문제들에서 접하는데, 근현대의 체제 중 특히 과학정신은 자신들이 완전한 문제-해결 메커니즘을 발견했고, 이것이 인류를 또 다른 도약으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연 우리는 이 주장을 믿어도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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