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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Che Kim Jan 30. 2023

갑순이와 을돌이의 이야기

[직장 20년 차 김프로 생존기]17. 갑을관계를 헤쳐나가기

직장생활에서의 갑을관계란 무엇일까?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 12 간지에 대한 한자표현이다. 갑을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뜬금없이 왜 난데없이 12 간지를 이야기하는지 궁금한가? 그것은 ‘갑을’이라는 게 바로 이 12 간지에 나온 갑을로부터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갑을관계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이것이 대체 무슨 뜻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갑을관계’를 검색해 보면 ‘계약을 맺을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자와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의 관계.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를 ‘갑’과 ‘을’로 대신해 표기한 데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으로 ‘갑’은 유리한 지위에 있는 자를, ‘을’은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를 나타낸다.’라고 나온다. 즉, 갑을관계란 계약상 ‘갑’ 즉, 계약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계약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을’과 맺은 불균형적인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사회에는 ‘을병/병정/정무관계…’ 등도 존재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살펴본 ‘갑을관계’라는 단어의 유래를 볼 때, 갑과 을은 단지 계약관계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계약이라는 것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위해서 작성하는 것이므로 ‘갑을’ 간의 관계라는 것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어야 맞다. 그러나, 흔히 ‘갑’이 ‘을’에게 주는 가치인 돈이 ‘을’이 ‘갑’에게 주는 가치인 무엇인가 보다 희소성이 떨어지는 경우에 ‘갑’이 ‘을’에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내가 ‘갑을관계’에 대해서 뚜렷하게 의식을 하기 시작한 것은 현재 다니고 있는 광고회사로 이직하면서부터이고, 면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마 평생 중에 ‘을’이 되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면접은 실무, 인사, 담당임원, 부사장, 사장의 다섯 단계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갑’으로 일을 하다가 ‘을’이 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인지 각오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어김없이 받았던 것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사실 당시에는 내 나이가 서른셋,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았던 터라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고 거기에 더해서 ‘어차피 직장인이면 상사에게 모두 ‘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연달은 ‘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나의 이직을 막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몇몇 지독한 ‘갑’들을 겪고 난 뒤이지만 그래도 당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당신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갑’들은 회사 외부에서 당신이 영업을 해야 하는 고객 중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회사 내에도 당신의 인생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갑질 사건 중의 하나에 ‘땅콩회항’이나 ‘일등석 라면 횡포’ 등이 있고 군대 내에서의 선임병들의 갑질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갑질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들이며, 요즘은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콜센터의 텔레마케터들에 대한 횡포나 백화점 ‘VIP’ 고객들의 판매직원들에 대한 횡포 또한 우리가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갑을관계’의 잘못된 발현으로 인한 갑질의 사례들이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 일명 '직장갑질 금지법'에서 볼 수 있듯이 직장 내에서도 갑질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일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갑을관계’라는 것이 우리가 사회적으로 제공한 일종의 ‘우선순위’ 또는 ‘우대순위’를 상황에 따라 무한확장한 결과로 ‘갑질’이 발생하게 되고 그에 대한 피해를 사회의 ‘을’들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갑질’ 즉, ‘갑을관계’의 폐해가 나타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너무 거창하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계약의 구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실천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의 오남용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원래 갑과 을은 서로 가치를 주고받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관계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으며 이때 한쪽을 갑으로 그리고 다른 쪽을 을로 정의한 것은 편의상 나눈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돈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잘못된 주인의식(?) 발현으로 인해 을이라고 하는 상품이나 용역을 제공하는 자를 마치 머슴처럼 취급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는 것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관행이 잘못된 만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선은 갑질의 유형을 거래선의 갑질과 상사의 갑질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 후, 대응방안과 앞으로 직장 내 갑을관계가 발전될 방향에 대한 예측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고객의 갑질


우선 회사 업무를 하면서 거래 상대방인 고객의 갑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가장 흔한 경우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도받고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 실적의 압박에 다음번의 영업을 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뱃속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은채 끌려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또는 구매를 하기 이전에 이리저리 조건을 조율하다가 거래 자체를 백지화시키고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특히 용역을 제공받았을 경우에 부가업무를 잔뜩 덮어씌워놓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상사의 갑질


또한 상사의 갑질은 얼마 전에 발생했던 IT업계의 고위임원에 의한 갑질로 40대 중간간부가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사례나 오너이자 상사인 ‘땅콩회항의’ 조 OO 씨 사례, ‘몰카제국의 황제’라 불렸던 양 OO 씨의 온갖 엽기적인 요구의 사례도 있다. 주로 무리한 요구를 빈번하게 하면서 그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직장 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고용 안정성을 위협받는 것을 빌미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경우들이다.


사내 권력집단의 갑질


자,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갑질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도 갑질에 속수무책일 때가 있었고, 따라서 내가 제시하는 방법이 천하무적의 대책은 아니니 너무 크게 실망하지는 않기 바란다. 그렇더라도 내가 을중의 을의 하나인 광고회사의 직원으로 10년 이상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제시하는 것이니 또한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우선 갑은 을하기 나름이다. 갑이 을에게 의뢰한 것들에 있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고 돈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갑들도 을이 자신에게 제대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건너가면 마냥 갑은 아니고 그 뒤에 있는 슈퍼갑들이 두려워서 을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처의 갑들의 경우가 그러한데 상당수 거래처들의 갑질은 내 거래처 담당자의 상사나 그 위의 상사들이 내리는 압박 때문에 기인한 것이며, 이 경우 을이 제공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준이 배후의 슈퍼갑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나의 갑들도 낙동강 오리알처럼 우수수 쓰러질 것이며, 이것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거래처의 갑질들은 대체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이 을에게 계약을 맺어 상품이든 서비스를 주문한 이유는 그들이 우선 그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그것들을 만들 능력이 없거나 만들 능력은 있더라도 여건이 되지 않아 을이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인데 을 측에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춰서 주느냐 최상의 상태를 맞춰서 주느냐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갑도 을에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내 예전 상사가 한 이야기가 있는데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갑과 을이 바뀐다.’라는 서비스 시장에서의 금언이라고 할 만한 말이었다. 그 말씀을 해석하자면 서비스의 공급에 대해서 계약을 체결하면 서비스에 대한 대략적인 요건은 정해지지만 구체화되지 않고 거꾸로 거기에 지급해야 하는 대가는 계약서의 성격상 거의 확실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계약을 아무렇게나 뒤집는 불법적인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을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불법을 자행하는 갑의 횡포가 만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푸념이 이 지면 너머로 들리는 듯하지만 일단 이 글의 마지막까지 읽어주시라.


한편 회사 내의 갑인 상사도 사실은 을인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다. 부장이나 임원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한데 그들은 직접 업무를 하는 것에 비해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비롯한 부하직원들이 성과를 내주지 않으면 슈퍼갑인 상위 임원이나 회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높은 곳에 있는 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데 따른 스트레스는 더 아래 있는 당신에 비해서 반드시 더 높게 마련이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 수많은 갑질을 하면서 그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점도 있다. 게다가 그들이 을인 당신에게 가지고 있는 제어력은 실상 당신의 연봉을 조정할 수 있는 평가에 대한 것뿐이며, 대한민국의 노동 3 법으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 非구조조정 상황에서의 해고라는 옵션은 아주 작은 기업이 아니라면 당신의 상사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을 압박해서 ‘자진’ 퇴사를 하도록 유도하는 노련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당신의 거래선이든 당신의 상사든 당신에게 갑질을 하면서도 사실은 당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들을 갖고 있다는 나의 천기누설 (?) - 사실은 이미 당신들도 알고 있었던 것을 글로 적은 것에 불과하다) – 을 잘 활용하여 당신을 괴롭히는 갑질에 잘 대응하기 바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 경우에도 의뢰받은 기획서를 광고주든 상사든 에게 제시할 때, 그들이랑 약속했던 최소한의 요건만을 갖춰서 제시할 권리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들이 그 결과로 나에 대한 평가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그들의 상사에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기획서로 깨져야 하는 사태는 얼마든지 야기시킬 수 있으며 나 개인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이후의 다른 프로젝트 또는 그 이전의 내 평판이 지켜주거나 회복시켜 줄 수 있다. 물론 이 권리가 있다고 해서 항상 행사하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이런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실제로는 몇 번 이 권리를 행사해보지 않았고 그때마다 엄청나게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뻔했다. (그 상대와의 큰 마찰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전에 고 최진실 씨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CF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갑은 을하기 나름’이다. 당신이 계속해서 갑질을 받아주게 되면 그 갑은 점점 슈퍼갑이 되어갈 것이며 당신이 단호하게 대처를 하는 현명함에 성공한다면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건강한 갑을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경영학 용어 중에 GIGO(Garbage in Garbage out – 쓰레기를 집어넣으면 쓰레기만 나온다)라는 것이 있는데 갑이 을에게 쓰레기 같은 대우와 요청을 하게 되면 을도 갑에게 쓰레기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밖에 줄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갑인 당신과 을인 당신들 모두 이 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끝으로 15여 년 전에 중국에서 TF업무로 미국계 리서치 회사와 업무를 했던 경험이 바람직한 을의 상으로 기억되어 이야기하면 당시에 우리 TF는 굉장히 짧은 시간과 예산을 가지고 중국의 전국에 있는 유통망의 현황을 조사하여 보고서에 반영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던 하버드 대학 졸업자 출신의 중국계 미국인이 설립한 리서치 회사를 섭외하여 2주인지 3주인지 하는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당시 30대 중반밖에 안 되어 보이던 리서치 회사의 대표는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제시한 후에 우리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약속했던 결과물은 어김없이 약속한 기한 내에 제출하였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그가 을이었음에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회사와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능력을 갖춰라. 그러면 당신은 우리 사회의 병폐인 갑을관계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내가 위에 적은 글이 갑의 횡포로부터 을이 완전히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이미 그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갑과 을은 손바닥을 뒤집듯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신이 갑질을 행사하던 상대가 당신의 상사로 스카우트되어 당신을 평가하는 사례나 당신의 을이었던 업체에 갑질을 행사하다가 을이었던 업체가 파괴적인 기술혁신에 의해서 을이지만 을이 아닌 슈퍼을이 되면 갑인 당신에게 제품을 판매하기를 거부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신에게 오늘만 있는 것처럼 갑질을 퍼붓기를 당장 멈추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마지막 단락에서 적은 사례가 거짓말처럼 당신의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오늘의 갑이 영원한 건 아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https://youtu.be/RKhsHGfrF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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