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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25. 2021

흔들리는 이와 흔들리는 마음

엄마, 두려워.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흔들리는 이가 신기한지 입에서 손가락을 떼지 못했다.





엄마 이가 계속 흔들려!





지금껏 제일 먼저 나와 자리를 지켜주던 작은 앞니가 빠진다니 시원 섭섭했다.


'난 이제 형님이야!'를 외치며 의기양양하던 아이가 다음날이 되자 시무룩해졌다.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엄마. 난 두려워.


뭐가 가장 두려운데. 놀다가 가 빠질까 봐? 그걸 삼킬까 봐? 피가 많이 날까 봐?


전부다...


그래... 걱정될 수 있지... 어디 흔들어보자.

아직 많이 흔들리지 않아서 오늘 빠지진 않을 것 같아. 삼켜도 똥으로 나올 거야. 그리고 피는 금방 멈추고.

그게 많이 두려웠어?


응. 











'무서워, 걱정돼'가 아니라 두려워라는 말을 쓰는 아이가 낯설었다.


두려움. 나는 잘 쓰지 않지만 아이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사용하던 단어 중에 하나였다. 아이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잘 알아차린다. 난 걱정되는 것과 무서움의 차이를 아직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걱정되면서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순식간에 몰아치는 경우가 많아서 나에게 두려움은 걱정의 조각들이 모인 무서움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난 두려웠다.


첫째가 두통으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의사는 혹시라도 뇌혈관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1%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MRI를 촬영했다. 아이가 검사를 하는 동안 박시 또래의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서 들어오기도 하고 보호자 부축을 받으며 링거병을 달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두근 거리며 두렵기 시작했다. 공포 영화를 볼 때의 무서움이 아니었고 검사 결과가 어떨지에 대한 걱정도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눈물이 찔끔 나고 손발에 땀이 나는 것. 커다란 주사를 앞에 두고 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던 긴장감. 이것이 두려움이었다.


사자를 앞에 둔 것이 공포, 무서움이라면 사자를 피해 돌 뒤에 숨는 것이 두려움, 집으로 도망쳐서 또 사자가 나타날까 봐 하는 생각이 걱정이다.


두려움은 행동하게 한다. 상황을 살피고 주변 정보를 모으고, 기회를 봐서 도망치거나 공격하게 한다. 하지만 두려움이 커져 공포가 되면 사람은 얼어붙는다. 그전에 마음을 얼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감사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준 아이에게 감사하고 한 달 뒤에나 가능했던 검사를 앞당길 수 있게 해 준 예약 취소자에게 감사했다. 한 번에 혈관을 잡아준 간호사에게, 안부를 물어준 지인에게, 소아뇌센터가 있는 병원을 추천해준 의사에게, 학교보다 검사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담임 선생님께 감사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쌓이자 두려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음은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여러 마음을 한꺼번에 담지 못한다. 두려움에 휩싸이면 그 감정을 강화시키는 생각들, 정보들이 마음의 그릇을 채운다. 그러면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담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통제권을 벗어난 미래에 집중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사자를 눈앞으로 가져오게 된다. 그럼 두려움은 무서움, 공포가 된다.


그럴 때는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 지나간 것들에 현재의 내가 의미 부여하는 것들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과거는 선택할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한 생각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흔들리는 이가 빠질까 봐 두렵다고 말하는 아이와 함께 감사의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내 작은 이야 고마워
네 덕에 이렇게 클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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