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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7. 2021

뭣이중헌디

새털같은 믿음

중1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고 박시의 아슬아슬했던 수업들은 조각조각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시는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별칭을 바람이라고 지어주실 만큼 자유로운 아이.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보다 아이들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6학년 때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 바닥을 안방처럼 뒹굴며 행복해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


나의 자리가 따로 없고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보이지 않는 온라인 학교에서 아이는 쉬는 시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회 수업을 들어가지 못했다. 끝나기 10분 전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박시를 관심 있게 보지 못했으니 뭐라고 증명할 길이 없었다.


 학교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곳이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이 좋으면 좋겠지만 높은 성적보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무단으로 빠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분노에 휩싸여 아이를 호되게 혼낸 뒤 둘째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을 갔다.







박시는 잘 지내죠?







박시가 3개월 때부터 초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7년을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님이 박시 안부를 물으셨다. 그 질문에 참고 참았던 놀람과 배신감, 걱정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원장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래도 학교는 다니고 있지요?







나: 네! 학교는 당연히 다니죠...

원장님: 학교에 적응 못하고 때려치우는 애들도 있어요. 학교 다니면 됐죠... 집에서 살고 있죠?

나:  원장님... 그럼 걔가 어디서 살아요...

원장님: 집 나가서 방황하는 애들도 있어요. 집에서 학교 다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난 박시를 믿어요.




집에 와서 아이에게 말했다.

나: 어린이집 원장님 기억하지? 원장님이 널 믿는대.

박시: 엄마, 난 원장님을 믿어. 엄마, 나를 못 믿겠으면 원장님을 믿어봐.

나: 그래, 7년을 지켜보신 원장님이니까. 엄마는 박시를 믿어.









카누아이 섬 실험이 있다. 카누아이 섬에서 태어난 800여 명의 신생아를 40년 동안 추적 조사한 실험이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201명의 아이들 중 35%가 훌륭하게 성장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 이상을 곁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 생활하더라도 주변에 나를 믿어주는 친구, 부모, 가족, 이웃들이 있다면 회복탄력성을 발휘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실험이다.


하지만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인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내 삶의 모습을 기억하고 말해주는 여러 사람을 갖고 있다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나의 모자란 부분에 실망하거나 누군가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에 괴로울 때.






내가 기억하는 너는 말이야...







하면서  일상의 모습을 기억하고 말해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면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내고 다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생길  있다.



넌 8시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레고를 맞추던 아이였어

넌 깜깜한 계곡에서도 겁 없이 앞으로 걸어갔었지

넌 무거운 짐을 든 내게 다가와 짐을 나눠 들자고 말했었단다

넌 내가 슬퍼할 때 곁에 앉아서 함께 울어주던 아이였어

넌 나를 만날 때마다 그림 선물을 했었단다



때론 엄마가, 때론 이모가.. 원장님이, 옆집 할머니가, 슈퍼 아저씨가.. 보내주는 새털 같은 작은 믿음들이 번갈아 가며 아이 마음의 구멍들을 채운다.



믿음의 힘인지 몰라도 박시의 1년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2학년이 되자 아이가 잦은 두통과 어지러움, 구토 증세로 학교를 못 가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일주일 남은 기말고사,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인생은 길고, 시험은 앞으로도 많을 텐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안달복달하는 내게 말한다.







뭣이 중헌디

뭐시 중헌지도 모르면서






삶의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흔들림 없이 지켜낼 수 있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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