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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4. 2021

이 새끼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를 부르는 말

정말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작은 방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외출 준비가 됐으니 이제 출발하자는 얘기를 하고 나오다가 아이의 사인펜이 보였다. 그래서 아이와 '아빠 발톱에 하트 하나 그려줄까?'라는 제안을 했고 이 상황이 재미있었나 보다. 평소에 자기 몸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아빠의 발톱에 하트를 그리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그런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이가 사인펜을 들어 아빠 발로 다가가는 순간, 남편은 발을 이리저리 흔들며 그림을 방해했다. 남편의 비언어를 봤을 때,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것도 아이와 놀기 위한 하나의 장난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동의와 허락을 구하는 질문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남는다.


장난이 점점 격해지면서 남편은 힘으로 펜을 든 아이의 손을 잡아서 아이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내 이마에도 낙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발가락 한 개에 하트를 그려주고 싶다였는데 일이 커져서 나는 얼굴에 아이는 팔과 다리에 선명한 여러 보라선을 갖게 됐다. 외출을 앞두고 벌어진 상황에 난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뭐야! 얼굴에 사인펜 칠을 하면 어떻게 해! 어떻게 나가!!'


아이는 아빠 손에 붙잡혀 자신과 한편이었던 엄마 얼굴에 그림을 그린 것이 속상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계속 그려지고 있는 선들을 보며 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 외치고 있었다. 평소에 나와 놀이할 때는 '하지마'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멈추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말했는데도 멈추지 않으면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다시 말한다.




내가 지금 하지 말라고 했는데, 못 들었어?






얼굴에 웃음을 빼고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을 나와 충분히 했고 하지 말라는 표현을 여러 번 했음에도 놀이에 빠져 신난 아빠는 귀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그러자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아이가 외쳤다.





하지마 이 새끼야!





남편은 놀라서 멈췄다. 그리고 황당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봤다.

이 단어는 남편이 화가 났을 때 중2 아들에게 하는 욕이다. 남편이 평소에 욕을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하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화를 내면서 이 새끼라는 말로 아이를 부른다. 그 말을 주의 깊게 들었던 아이는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상대가 움직이지 않을 때 정신 차리게 해주는 말. 이 새끼.









일이 있기 얼마 전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이 새끼는 나쁜 말이야?

어! 그럼 나쁜 말이야. 그건 나쁜 사람들이 쓰는 말이야. 그 말을 사람에게 쓰면 안 돼.

근데 왜 아빠는 오빠한테 그 나쁜 말을 해?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아빠가 화가 나서 실수한 거야. 나쁜 말인 걸 아는데 자기도 모르게 한 거야. 이제 안 하실 거야.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알았다고 했지만 화가 나면 또 그놈에 '새끼야'가 또 튀어나왔다.


안다. 마트 앞에서 내 설명은 현명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좋고 나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예의 바르고 정중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욕을 사용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따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나는 당황했고 아이가 그 말을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친구, 어른들에게 사용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게다가 나는 '나쁜 말을 하면 안돼'로 죄책감을, '나쁜 사람이 되면 안된다'로 수치심을 줄 수도 있는 말들을 해버렸다. 이 말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타인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자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기에 속상했다.


오늘 나에게는 세상에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얘기와 죄책감과 수치심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바람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하지만 숙제의 부담보다 아이가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서 배운 말이 사랑해가 아닌 이 새끼라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그 후로 아이가 화를 내는 상황은 몇 번 있었지만 한 번도 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왔다. 나도 많이 당황해서 ' 율아 화가 많이 났어? 그래도 새끼라는 말은 쓰면 안 돼.'라고 말하자 아이는 '나도 알아.'라고 하면서 바로 잘못했다고 얘기한다.

난 이번이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아빠도 사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왜! 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별것도 아닌 일인데 네가 이렇게 말하니까 애가 집중하게 되잖아.

그냥 혼내.







아이는 오늘 배웠다.


나쁜 말이긴 하지만 아빠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단어라는 것

어른, 힘을 가진 자는 말해도 되지만 아이, 약자는 말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것

부끄러울 땐 화를 내면 된다는 것




아이가 어른이 되고 상대보다 내가 더 많은 힘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말이나 행동으로 겁을 주지 않고도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원하는 것을 채워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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