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 May 18. 2021

나 자신에게 벌주기

언제나 내편이 되어 줄 한 사람.

게임에 빠진 중2 아들과의 갈등이 정점을 찍고 있다.


코로나로 아이들과의 놀이가 사라지면서 놀이 공간은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 남편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아이의 게임하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하고 노는 행위들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거실 중간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박시

1. 놀이 가르치기

타르코프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박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현재 6명, 학원을 가듯 같은 시간에 모여 기술과 전략을 전수받는다. 온라인인데 아무랑 하면 되지 피곤하게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면? 친구랑 함께 할 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박시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배울 때, 유투버들이 알려주는 게임의 기술과 전략을 공부한다. 아이들이 빨리 죽어 버리면 흥미를 잃기 때문에 게임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확실한 엄호를 수행한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아이들은 안전하게 전투기술을 습득한다. 6명의 엄마들이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에서 그 게임이 잔인하고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2. 상대를 능력 있는 경쟁자로 키우기

아이들은 즐겁게 놀이하기 위한 방법들을 잘 알고 있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놀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난이도를 낮추거나 잘하는 아이에게 페널티를 적용해서 실력을 비슷하게 한다. 실력이 비슷해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 놀이해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충분히 시켜서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이것은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놀이와 게임에서 한다.



물론 맘만 먹으면 게임 안에서도 왕따 시키고 욕하면서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의 게임은 다행히 친구들과의 의리와 우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재미있는 것이 특별히 없다고 하고 어떤 것에도 열정을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친구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 한다.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싫은 것을 억지로 하며 자유 시간을 확보하고 컴퓨터 앞에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면 하지 말라는 말을 단호하게 할 수가 없다. 이해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다.


남편은 다른 것은 잘 모르지만 박시가 타르코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안다. 그래서 게임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계정을 삭제한다는 벌칙을 걸었다.


난. 그 벌칙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삶의 전부인 계정이다.


나도 약속을 지키고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한 가치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이것을 배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타르코프 계정 삭제라는 벌칙이 있음에도 약속을 어긴다면 다음 벌칙은 무엇이 될까? 그땐 어쩔 수 없이 맞아야겠다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이 벌칙 괜찮아?
동의할 수 있어?




벌칙에 동의한다는 표현이 참 낯설긴 하다.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통제하기 위해 내리는 벌에 동의라니. 아이는 게임을 할 수 있기만 하다면 뭐든 하겠다고 한다.


지금 너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감정적으로 결정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어.

지키면 돼! 약속하면서 어길 걸 걱정하냐? 박시 너 분명히 약속했다. 이번에 어기면 계정 삭제야!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하지만 때론 못 지킬 때도 있다. 나도 남편도 못 지키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그냥 꾹 삼켰다. 부부의 갈등으로 번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아이는 약속시간을 14분 어겼다.


계정 삭제를 한다는 말, 왜 약속을 못 지키냐는 말, 어떻게 하루도 안 지나서 약속을 어길 수 있냐는 말, 이렇게 예측 능력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 등이 쏟아지자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때리더니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한다.


괴로웠다. '부모에게 힘으로 맞서 싸우지 못하니 자기를 때리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박시야 괴로워? 후회돼?

응. 나 바보 같아, 그래서 나 혼내주는 거야.

엄마 괴로우라고 그러는 거 아니고 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내주는 거야?

응. 나를 혼내는 거야.


한참을 울고 불고 난리가 난 뒤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뽑힌 머리카락을 모아서 나에게 가져다주며 나의 반응을 살피는 아이. 두 사람을 혼내기 위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박시야. 엄마 눈 봐.

세상 모든 사람이 아무도 네 편이 되어주지 않는 순간에도 딱 한 사람은 늘 네 편이어야 해. 그게 누군 줄 알아?

나?

그래. 너.

엄마 아빠한테 혼나서 안 그래도 마음 아픈데 너까지 '이놈!' 하면 박시는 어떻게 살아. 넌 꼭 네 편이 돼줘.

엄마랑 약속해.

응, 알았어. 내편 할게.

사춘기 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눈과 가슴에 새기는 것이 보인다.






난 늘 내편이 되어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제일 어려운 말, 네가 알아서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