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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May 18. 2021

제일 어려운 말, 네가 알아서 해

마음의 언어

2박 3일의 가족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늦은 도착에 요리를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시켜먹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배달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어렵게 찾은 곳의 음식은 끔찍했다.


시어머니는 조금 드시더니 '맛없다! 잘란다.'라는 짧은 말을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7시 30분 급하게 짐을 챙기시더니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신단다. 그러면서 짧게 남기신 한마디.






내가 며느리를 너무 잘 둬서
밥 한 끼를 못 얻어먹는다.





이번 가족 여행은 칠순잔치를 대신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많이 쓰였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들을 생각하며 일정을 짜고 애썼는데 마지막에 그런 얘길 들으니 서운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셨다.


어머니가 가신 후 일주일 동안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고민했다. 뭐가 서운하셨을까? 어디서 화가 나신 걸까?


키우고 있는 닭 때문에 냄새나서 짜증 나셨나? 아님 정말 미역국이 있는 생일 상을 원하셨나? 아님 친구 만나러 가서 자랑할 선물이 필요하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집 청소가 덜돼서 일까?


모든 것이 원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결국 고가의 명품 스카프였다.


스카프를 사러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이번 여행에서 못 가본 곳이 자꾸 생각이 난다. 다리 아파도 그냥 더 다닐걸. 이제 여행 좀 많이 다녀야겠다.

여행 좋으셨어요?

좋았어. 이번에 갔던 곳 또 가고 싶다.

그럼 한번 더 가죠 뭐.

그래. 시간 좀 내봐라.


그리고 기분이 좀 나아지신 것 같아서 물어봤다.


백화점에서 스카프 하나 사려고 해요. 작은 게 좋을까요? 아님 큰 걸로 할까요?

아니! 사지 마라. 집에 스카프 많아

전에 스카프가 많이 낡으셨던데요.

원래 감이 그런 거야. 사지 마라.

이번에 생신이셨는데 선물도 없이 여행으로 끝난 거 같아서요. 가실 때 밥 얘기하시길래 서운하신가 했어요.

네가 한 번도 밥 한번 안 해준 건 사실이지. 너 힘들고 부담될까 봐 내가 아침 일찍 나오잖니.

그럼 담에 밥해드릴게요. 맛은 없을 수도 있지만...

집 좀 치워라. 닭은 뭐고 냉장고는 그게 뭐냐. 냉장고 밖에는 뭐가 잔뜩 붙어있고. 배달 그만 시켜먹어.

그거 배달 전단이 아니라... 율이 그림이에요...

그래? 오해했네. 암튼 청소 좀 해라!



결국 집 청소 상태 불량과 배달 음식 때문이었다.


외국말도 아닌데 그걸 알아듣는데 일주일이나 걸리다니.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허탈하고 맥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유를 알게 되니 속은 후련했다.


다시 여행 가자는 말로 따뜻한 결말을 만들며 전화를 끊었지만 난 참 아쉬웠다.


사람들은 왜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할까.


내 자식과 갈등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남의 살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월권인 것 같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말하지 못하는 이유 뒤에 숨겨진 바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을 경우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그걸 말로 해야 아니?
네가 알아서 해라, 내 맘에 들게.





두고 보지 말고,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도 상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거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마음의 언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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