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ug 24. 2021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
선한 영향력의 힘
엄마 밥은 맛이 없어
15살 아들은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뻔한 반찬의 도시락을 시켜먹으면서 엄마 밥만 아니면 다 맛있다는 얘기를 할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을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지인 중 한 명이 연두를 추천해줬다.
맛도 없고 몸에도 안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조미료를 쓰지 않았는데 어차피 외식을 하면 조미료를 먹는 것과 같으니 그냥 넣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성분표를 보니 천연 원료인 듯해서 죄책감이 좀 덜어졌다.
한참 계란찜을 해 먹고 다 써서 버리려고 뚜껑을 여는데 이상하게 뚜껑 부분이 돌아가지 않았다. 뜨거운 물도 부어 보고 힘으로도 돌려봤지만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못 버리고 있는 병몸통 부분은 유리고 입구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데 분리가 안되도록 만들었을 리가 없다며 낑낑거리다가 결국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나 : 분리수거를 하려는데 뚜껑을 어떻게 열죠? 방법을 알려주세요.
직원 : 고객님, 분리 못합니다.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리세요. 손 다치실까 봐 걱정됩니다.
나 : 분리 안되게 만들었다고요?
직원 : 네, 분리 못합니다.
나 : 이건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아요. 저... 죄송하지만 본사에 얘기 좀 해주세요. 분리수거 가능한 포장으로 바꿔야 한다고요.
직원 : 네, 알겠습니다. 본사에 전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객센터 직원은 정말 친절했다. 그리고 본인이 한 잘못도 아닌데 거듭 죄송하단다. 마음 한편에서는 '괜히 유난 떨었나? 참 한가한 사람이라고 하겠네.' 하다가도 '아니야, 이런 건 바꿔야지.' 하는 두 마음이 투닥거렸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전화를 끊고 잊었다.
그런데 얼마 후 문자가 하나 왔다.
내가 낸 의견에 따라 용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선물도 보내준다고 했다. 난 문자를 보고 정말 기뻤다. 선물이 온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앞으로 달라진 용기의 제품이 판매될 것이며 환경을 지키는데 내가 기여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본사에 내 의견을 올려 준 서비스센터 직원도 고마웠다. 샘표에서 광고비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잘될 거라고 빌어주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회사를, 세상을 통제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를 낸다. 때론 자신이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세상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욕을 하며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변화를 위해 내가 행동할 때 작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을 아이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선물 상자가 왔길래 박시를 불렀다.
나 : 박시야, 엄마가 세상을 바꿨어! 이제 엄마가 얘기한 뚜껑을 달고 제품이 나올 거야. 이게 바뀐 포장이래!
박시: 치, 그게 엄마 혼자 한 거겠어? 엄마 말고도 여러 사람이 얘기했을 거야.
나 : 응 그랬을 수도 있어. 엄마 같은 한 명이 모이고 모여서 힘을 만든 거야.
그런다고 기업이, 나라가, 세상이 바뀔 것 같냐고 했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영향을 받고 변해. 잊지 마.
비겁한 사람들은 욕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움직여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삶 안에서 직접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5살 아이는 자기보다 큰 세상과 권력에 무기력 해진 것 같아 속상했다.
무기력을 만드는 3가지가 있다.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