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손님이 되는 일
오후에 노트북 들고 잠시 집 앞 카페에 다녀왔다. 작은 공간에서 흐르는 음악이 좋았다. 우유를 적게 넣어달라 요청한 바닐라 라떼도 맛있었다. 사십 분 정도 머물며 글을 썼다. 여러모로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공간에 머무를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역할에서 벗어나 '나'에 가까워진다. 으앙 울음소리에 호출돼 달려가는 엄마가 아니라 취향에 맞는 음악 찾아 듣기를 즐기던 그런 내가 되는 것. 그래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은 줄도 알고 커피맛도 느끼며 마실 수 있다. 의욕 없이 보내던 일상에 생기가 나서 권태감이 사라진다. 엄마가 매일인 일상. 공간을 바꿔 손님이 되고 나니 그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 그런 것이다. 공간을 바꾸는 일은 역할을 바꾸는 일.
오늘 사랑이는 일찍 하원 해 건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먹고 놀았다. 쉬 할 때가 된 것 같아 사랑이 있는데서 외할머니에게 '사랑이는 어제 화장실이 깜깜했는데도 용감하게 들어가 쉬를 하더라'하니 사랑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화장실에 갔다. 불을 켜주려고 하니 불도 못 켜게 하고 혼자 바지와 팬티를 내린 뒤 볼일을 보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사랑이에게 "우와 사랑이 깜깜한데도 쉬를 한 거야? 바지도 혼자 내리고?" 했더니 "웅! 사랑이는 모든지 할 수 이써!" 한다. 의기양양한 얼굴, 자신감 있는 말투. 얼마나 귀여운지!
귀여운 사랑이에게 소방차도 그려주고 화장지 심으로 동그란 불도 만들어주고 오랜만에 밀가루 점토도 만들어주었다. 점토에 색소 입히는 건 사랑이의 몫으로 주었다. 엄마와 함께 만든 색깔 점토는 아이스크림이 되었다가 핫도그가 되었다가 결국은 똥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되었다. 열심히 놀고 저녁도 잘 먹고, 퇴근한 아빠와도 즐거운 시간 보냈다. 바다는 배부르게 쭈쭈 먹고 모빌보다 졸다가 바운서에 좀 앉아있다가 또 쭈쭈 먹고서 잤다.
나한테 투자한 사십 분 남짓한 시간으로 저녁 내내 즐겁게 육아한 오늘. 귓가에 자동차 구조대 노래가 아니라 카페에서 들었던 곡이 맴돌아서 그것도 좋았다. 그러니 오늘, 여러모로 흡족한 하루.
20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