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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n 16. 2023

출간 4개월 만에 나의 첫 책을 읽었다.

자기검열도 지나치면 병이다.

2023년 2월, 공저로 참여한 책이 출간되었다. 우편으로 받아본 책과, 표지에 적힌 내 이름 석자를 보았을 땐 좋았다. 공저 지만 책이 나왔으니 나도 정말 작가가 된 걸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이 시무룩 가라앉았다. 책을 읽고 독후록을 쓰고, 블로그나 온라인 서점에 서평을 남기고, 종종 글쓰기 공모전에 도전장을 내밀고, 함께 읽고 나누는 일상을 글로 풀어내며 살다 보니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기쁜 마음도 잠시, 나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어쩐지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3개월가량 책을 방치해 두었다. 그러던 중 1년에 한 번 도서관에서 지원받아 진행되는 <작가와의 만남>을 동아리 친구와 함께 공저로 참여한 우리의 책으로 하게 되었다. 함께 해보자는 친구의 제안이 없었다면 생각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사실 난, 아직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떨려서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우리가 함께 참여한 책이니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잘할 거라고.  순도 100% 내향형 인간인 나는, 강연 날이 오지 않길 바랐고 밤이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그것도 아니라면 마법처럼 내가 훅' 사라지길 바랐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떤 바람만으로 인간이 사라지거나,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결국 난, 사람들 앞에 서서 나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쿵쿵 쿵쿵. 가슴팍에 마이크라도 달고 있었다면 도서관이 내 심장 소리에 흔들리지도 모를 만큼 심장이 뛰었다. 자연스러운 호흡과 안정된 발성, 적절한 제스처와 사람들과의 눈 맞춤 따윈 없이, 에이포 용지 5장을 가득 채운 길고 긴 글을 그냥 주르륵 읽었다. 최대한 천천히, 될 수 있다면 부드러운 종결어미를 써서.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처음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만약 이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책을 읽지 않았을거다.



책 더미 위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책에 손을 뻗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고를 쓰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고쳐 나가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었다. 다양한 이력과 활동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쩐지 자꾸만 주늑이 들어서 확신 없는 미래를 자주 끌어다 썼다. 아줌마나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었다.  쓰는 사람을 향한 욕망은 진심이니 그 정도는 갖다 써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저는요, 작가가 될 거예요."라고.


그 말, 그때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첫 책을 축하하고, 웃으며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책을 읽으려면 위악을 떨듯 내뱉었던 그 말을 마주해야 했다. 동시에 여전히 그냥 아줌마이고 엄마인 나도.


싫었다. 그게 너무 형편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는가? 그 치열함이 가져다준 것이 고작 이렇게 볼품없이 구겨진 마음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글은, 문장으로 기록된 이야기는 마치 거울처럼 그때의 나를 보여줄 거였다.

글쓰기에 대한 갈망과 나를 채우기 위해 썼던 애씀들. 삶이 버거워 한껏 느슨해진 내게, 그런 흔적은 되려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나의 글이 한동안 잠잠했던 내 안에 판사를 불러낼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결국엔 책을 읽었고(읽어야 했으므로), 함께 공저로 참여했던 오랜  내 친구와 관내 도서관에서 우리의 책, <우리 함께 볼래요?>로 작은 강연을 했다. 흔히 '북토크'라 불리는 그런 것.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선생님들의 글, 그리고 그때의 우리(친구와 나)를 다시 마주하면서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읽고 쓰는 삶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웃고 울었던 시간들. 그러다 알게 됐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을 땐 늘 후회나 아쉬움만 느꼈던 내가, 무언가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부터는 조금은 기쁜 마음과 뿌듯함으로 나를 반추하고 있다는 걸.  


하루도 빠짐없이 애쓰며 살아가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삶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책 하나 정도는 나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것도 아니라면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에 내가 나를 끌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혼자서 조금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되려 속이 시원해졌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게 생각보다 뿌듯했고, 어설픈 강연을 준비하면서 돌아보아야 했던 지난 내 삶이 싫지 않았다. 누구보다 애쓰고 누구보다 열심히인 내가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미친 듯 책을 읽었던 2016 가을부터 2017년 가을  1년의 시간 동안 온라인 서점 블로그에 무려 240편의 독후록을 남긴 거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살았던 나를.  그런데 나는 왜, 지금의 나를 이토록 부끄럽게만 생각했을까.


조금 더,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나, 여전히 꿈꾸고 있는 나'에 방점을 찍고 싶다. 출간 4개월만에 스스로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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