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리뷰

"트라우마는 반드시 생존을 전제로 한다."

by 도리서가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범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료자의 시선에서 기록한 책이다. 트라우마를 단순한 정신적 충격이나 일시적 감정이 아닌, 신체와 뇌, 인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생존 반응의 총체로 설명하며, 독자가 그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몰 트라우마(small trauma)’ 개념이다.


“스몰 트라우마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개인의 심리적 적응 범위를 넘어서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이다.”(49쪽)


우리는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때 주로 전쟁, 재난, 성폭력 같은 ‘빅 트라우마’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는 무시, 조롱, 외면, 혹은 지속적인 불안도 개인의 회복력을 소진시키며 심리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감정적 격앙, 과잉 반응, 무기력 같은 모습들이 실제로 이 스몰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감지하려는 교사의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하나 오래 머무르게 했던 부분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대한 통찰이었다.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된다. 계속해서 안전한 상태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나는 피해자와는 다른 사람이야’하고 심리적 거리 두기를 한 뒤, ‘그러나 나는 그 피해를 보지 않을 거야’하고 자기 자신을 위험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120쪽)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평가는 우리 사회에서 은근히 자주 발생한다.

그 이면에는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기중심적인 심리적 거리 두기가 숨어 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도 자신의 안정과 질서를 지키려는 인간의 본성은 때로 냉정하고, 심지어는 잔인하다.


“나는 그 피해자와는 다르다"라는 구분 짓기,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합리화는 자기 방어를 넘어 피해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을 보호하는 태도다.

이는 공동체적 시선이 아니라, 이기적인 생존 전략에 가깝다.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이기적인 관찰자들이 2차 가해자가 되는 구조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그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선을 긋고, 피해자를 감정적으로 거리 두기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관찰자였고, 무지한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고통을 ‘지워야 할 상처’가 아니라, 다룰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신호로 본다.

트라우마는 단지 기억이 아니라, 뇌와 몸이 기억하는 생존의 흔적이며,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다뤄질 수 있는 고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고통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위로나 측은함이 아니라,

책임 있게 바라보는 태도다.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멈추는 것,

그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만든 반응을 ‘유난스럽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명료한 메시지다.


# 마무리하며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는 트라우마를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고통’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생존의 반응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타인의 고통을 판단하거나 축소하기 전에, 그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이해하려는 태도가 먼저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학생들, 그리고 그 곁에서 그 마음을 붙들어주려 애쓰는 어른들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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