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 석고대죄

by 어진아빠



요즘 ‘심심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라는 표현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심심하게(‘지루한’이라는 뜻) 대충 사과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화를 내는 댓글을 단 것이 화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심심한 사과 또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할 때 ‘심심(甚深 : 심할 심, 깊을 심)’은 ‘매우 깊다’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주로 공적인 자리나 예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안타까운 일을 위로하거나 사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과와 관련된 옛 표현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석고대죄(席藁待罪 자리 석 ・ 볏짚 고 ・ 기다릴 대 ・ 죄 죄)입니다. 대문이나 궁문 아래 거적을 깔고 무릎 꿇고 앉아 윗사람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사극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석고대죄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의관을 벗고 소복을 입은 채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맨바닥에 오랜 시간 있어야 하기에 무척 고통스러운 형벌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가 남긴 자전적 회고록 ‘한중록’에는 시아버지(영조)와의 갈등으로 뒤주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석고대죄를 많이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비슷한 의미의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가시나무 회초리를 지고 벌을 주기를 청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병자호란 시절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지만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끝내 청나라에 굴복하고 맙니다. 청나라는 항복의 예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 첫 번째가 손이 뒤로 묶인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메고 나와 항복하는 함벽여츤(銜璧輿櫬 : 재갈 함, 구슬 벽, 수레 여, 오동나무관 츤)이었습니다. 옥을 입에 물고 관을 메고 나아가 항복하는 의식으로 관을 메는 것은 자신을 죽이더라도 이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였습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린다는 의미입니다. (청은 조선을 배려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첫째 절목(節目)은 면제해 주고 두 번째 절목을 시행하라고 요구합니다.)

사과를 통해 화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만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지만 그저 말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석고대죄’, ‘삼궤구고두례’, ‘함벽여츤’이 아니면 절대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용서가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손톱만큼도 손해보지 않고 상대를 밟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도 늘어갑니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밟힐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대학』에 혈구지도(絜矩之道)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서 싫어하는 바로써 위를 섬기지 말 것이며, 앞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뒤에 먼저 하지 말 것이며, 뒤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앞에 따라가지 말 것이며, 오른편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왼편에 건네지 말 것이며, 왼편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오른편에 건네지 말 것이며 이러한 것을 ‘혈구지도’라 하는 것이다.


혈구(絜矩)란 ‘헤아리다 혈(絜)’, ‘곱자 구(矩)’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곱자는 직각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만든 자입니다. 여기서는 기준으로 삼는 올바른 자(尺)를 의미하는데, 윗사람인 자신이 싫어하는 바를 아랫사람에게 부리지 않는 것, 즉 자신만을 생각하는 잣대가 아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한자로 서(恕)는 '용서하다'라는 뜻입니다.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글자로 마음이 같아져야 할 수 있는 것이 용서입니다. ‘혈구지도’로 나의 마음과 상대 마음을 같이 할 때 서(恕)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 앞에 엎드려 고두사죄하는 마음에도 없는 행위만을 바라니 용서가 될 리 없습니다. 수많은 갈등 상황을 중재하고 지켜보면서 ‘사과를 전제로 하는 용서’는 끝까지 용서가 안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용서는 사과와 상관없이 상대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릴 때 나오는 것입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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