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는 세종의 단독 프로젝트 사업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로 감당이 안 되는 문자 창제 사업을 한 개인이 소수의 사람들과 진행해나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종이 반대 상소문을 올린 최만리 등에게 한 말입니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 기사)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상대로 너는 잘 알지 못하지 않느냐, 이 작업을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자부심과 실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학의 대가로서 세종의 자신감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록에는 세종이 중국과 일본에서 구해온 언어학 서적들을 읽은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언어학에 통달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릴 수 있으려면 말 그대로 그 방면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어학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위대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