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연수
홈스테이 이틀째. 이날도 어김없이 요리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 저녁은 치킨카츠!
나, 언니 J, 아미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옹기종기 모여 각자 할 일을 정했다. 먼저 내가 커다란 닭가슴살 덩어리를 칼로 얇게 썰고, 아미가 여기에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혔다. 마지막으로 J 언니가 새 옷을 입은 고기를 튀겨내면 완성이었다.
처음 몇 개를 튀길 때까진 요리 시간이 즐거웠다. 튀김은 집에서 직접 만들 기회가 적은 요리였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처음 자취라는 걸 해보고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분에 취해있었을 때도 튀김 요리는 귀찮아서 엄두도 못 냈다. 썰어둔 고기와 각종 가루를 담은 그릇들은 식사가 끝나고 나면 결국 어마어마한 설거짓거리가 된다. 그리고 온 주방과 손에 튀는 뜨거운 기름, 옷에 베는 냄새까지. 튀김 요리를 한다는 건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집에선 못 해봤던 걸 직접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반복하는 건 지겨웠다. 1시간이 다 되도록 요리를 했는데 재료는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무라 씨 가족 5명과 J, 나, 그리고 오늘의 특별 손님인 이무라 씨의 어머님과 할머님까지, 총 9명의 배를 채울 고깃덩어리는 썰어도 썰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아미는 지겨워서 이미 J 언니와 역할을 바꾸고 있었고, J 언니는 기름 냄비의 열기 때문에 발그레해진 얼굴을 식히면서 고기에 빵가루를 묻혔다. 모두의 저녁 식사를 위한 요리가 아니라 치킨카츠 공장에서 식품 제조 노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썰고, 묻히고, 튀기고, 또 썰고, 또 묻히고, 또 튀기고. 계속 생각 없이 칼질을 하다보니 고기 모양은 어느새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방금 썰었던 고기는 내가 봐도 웃기는 모양이었다. 초밥 위에 얹는 회처럼 얇고 작은 살점이었다. 옆에 서 있는 아미에게 이걸 보여주면서 치킨 사시미 좀 보라고 했더니, 아미가 피식 웃었다. 아직 썰어야 할 고기는 많이 남았지만, 아미를 웃겼다는 뿌듯함을 안고 다시 칼을 바로 잡았다.
30분쯤 더 지났을까. 어느새 쟁반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치킨카츠가 가득 담겼다. 너무 많이 익어서 색이 좀 진해진 것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와서 놀랐다. 산더미처럼 쌓인 치킨카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편안하고 풍족해지는 것 같았다. 남은 요리를 마저 마무리할 의지가 생겼다.
잠시 뒤, 초인종 소리와 함께 바로 앞집에 살고 계신 특별 손님이 찾아오셨다. 이무라 씨의 어머님과 할머님은 일주일에 한 번은 이무라 씨의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셨다. 우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두 분은 식사를, 우리는 요리를 마저 마무리했다. 두 어르신의 입에 우리가 만든 음식이 들어가자 기분이 묘해졌다. 한국에서도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 자주 요리를 해줄 수 없는데, 만난 지 10분도 안 된 사람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다니.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두 분은 모두 그릇을 싹 비우고 가셨다. 남은 일본에서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우린 두 분이 가시고 난 뒤에야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식탁 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인 치킨카츠를 두고, 각자의 접시에 치킨카츠를 덜어왔다. 양배추, 옥수수, 토마토를 곁들이면 완성. 치킨카츠 위에 취향에 맞는 소스를 뿌리면 진짜 완성. 갖가지 색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이제 막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의 팔레트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려고 했을 때, 이무라 씨도 입을 여셨다.
“둘 다 맥주 좋아하니?” 형식적인 사양 뒤에 놓인 맥주캔과 유리잔. 나는 맥주 그 자체도 좋아하지만, 캔에 달린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힘을 줄 때 생기는 청량한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맥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피로로 딱딱해졌던 어깨가 말랑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입안을 채우는 샐러드와 치킨카츠. 식탁에 놓인 치킨카츠가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 먹을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치는 맛이었다. 오늘 저녁의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