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생아 된 듯, 살아보자
나는 부러운 게 많은 사람이다.
나이가 마흔 줄에 다다라 주위를 둘러보니
10년 넘게 한 분야에 몰입해서 책을 내고 유명해진 선배교사도 있고
대학 시절에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던 대단할 것 없던 친구가
입시판에서 유명한 일타 강사가 되어있었다.
주변에 나보다 능력 있고 잘 된 친구들도 사람들도 많아
좋으면서도, 외롭고
외로운 만큼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술도 같이 마시고
공부도 같이 하고
직장도 같이 들어갔는데
지난 15년 간 나는 무얼 하며 살아왔을까.
나이가 마흔 줄에 다다라서야 겨우 나 자신을 바라보니
아이 둘이 한창 예뻤을 때라고 하는 보석 같은 시절들은
머리털 숭숭 빠져가며
무슨 정신으로 보냈는지조차도 다 까먹어 버렸다.
단기기억력은 메모하지 않으면 일상이 어려울 지경이고
깔깔거리며 손바닥 치고 웃으면서
도파민 길어 올릴 때 사용되는 추억팔이용의
'그땐 그랬었지'라는 장기기억력조차 여기저기 구멍이 휑하니 뚫려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그때그때 나 자신을
대충대충 챙기며 살아왔다는
치열한 '느낌'들 뿐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진하게 말라붙어
과거의 존재했음을 알게 하는 '흔적'들 뿐이다.
볼품없어진 몸매와 몸매만큼 쳐진 체력,
평생 동안일 줄 알았더니 제법 나만큼이나 늙수그레한 남편,
여전히 예쁘지만
가끔씩 두 눈을 치켜뜨고 고요히 반항할 줄도 알게 된 두 딸들.
생계형이라
학부모와 학생의 민원에 마음을 다쳐가며
'옳은 것을 옳다' 소신껏 가르치지 못하게 된 삶의 초라함.
나의 빛나는 모든 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서
문득 한없이 슬퍼졌었다.
이것 역시 행복한 삶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것들이라며
위안할 수도 있겠지만
온전히 내가 꿈꾸어온 삶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내 삶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대로 쪼그라들기에는
단백질 함량이 너무 높은 삶이라
아깝지 아니한가?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씨앗들처럼,
오랜 시간 냉장고 구석에서
예전에 지녔던 생명력을 잃은 채
살아 있는 것도 죽어버린 것도 아닌 채로
누군가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지워져
껍질처럼 쪼그라 말라 붙어가는 훈제란처럼.
이러한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내게'는 미안하고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눈이라도 뜨기로 했다.
그 결심이 무색하지 않도록
한 번 더 정신줄 풀어놓고 꿈나라로 떠나고 싶은 본능과 싸우면서
내 무의식은 뒤숭숭하고 의아한 꿈자리라도 기꺼이 만들어 내서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맞추어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야 만다.
새벽 시간을 틈타
나는 단백질 함량이 꽤 높은,
아직은 쓸만한 인간이라고 믿어보면서
곧 죽어도 하기 싫어해 꾸역꾸역 해냈던 공부를
등 떠미는 엄마도 없는데,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도 되는 대로 한 번 해본다.
생전 관심조차 없었던 경제용어를 공부해 본다.
내겐 암호 같고 딴 나라 언어 같기만 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신기하다.
마흔 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가 재미있어지다니,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통통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신생아가 되어 세상을 깨우치는 재미가 이러할까,
배우는 재미, 몰랐는데 고거 참 쏠쏠하다.
그래, 매일 신생아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아보자.
실패도 없고 후회도 없는 신생아처럼
새로운 내일을 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난 거라 생각하며 2회 차 인생에서는 갓생을 살아보아야지.
부러워만 하고서 웅크리고 앉았던 알을 깨고 나와서
나답게 내 삶을 자신 있게 살아 보아야지.
나를 일으켜 세우느라
고생한다, 내 무의식
고맙다, 내 무의식
내일 아침도 부탁한다,
두 눈 번쩍 무의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