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시간, 눈을 뜨다
과거로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면
나는 다이어트를 실천했던 시간들을 꼽을 것이다.
본능에 맞서며 오랫동안 참고 견뎌야 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욕'과 '배고픔'이라는 본능,
먹거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어울림'을 통해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와 싸우며
'나'를 홀로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시간.
매 순간 이성으로 자신을 부여잡는 행위는 스스로가 선택한 '형벌'과도 같다.
본능과 욕구는 매 순간 치열하고 끈질기게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유혹들이 마음속에 넘실거릴 때마다 고민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다가 깜짝 놀라 손가락을 움츠리기도 한다.
매일, 매 순간 쉼 없이 반복되는 고통의 굴레가
마치 시지프스가 자신을 향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탈'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미쳤었나 봐'로 표현되는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음식을 입안에 번개 같은 속도로 집어넣고 미친 듯이 저작활동을 해버리는 것.
고삐가 풀려 포만감을 향해 질주하는 이 순간,
당신은 정말로 자유로울까?
아니다. 다음 날 체중계 위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보다 더 낮은 아래의, 지하로 내려가
후회와 자책감으로 더 무거워진 돌을 다시 밀어 올려야 한다.
어차피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이라면
끝나지 않을 영원한 형벌에 무게를 더하게 되는 것뿐,
결코 피할 수 없는 이 시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현명하게 보내고 있는가?
명절을 앞두고 다이어트 시작하기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 시기와 끝내는 시기를 고민하기도 한다.
모임이 비교적 적은 시기이거나 스트레스가 적은 시기에 다이어트를 한다면
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끝나는 시기에 다이어트의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이어트를 결심한 뒤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며 달력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마침 2주 후로 다가온 '설날'에 눈길이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명절이 지나고 난 뒤 다이어트를 시작하곤 한다.
명절 때까지 먹고, 찐 살을 뺄 겸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명절 음식에 입맛이 익숙해진 데다가
잔뜩 위를 늘려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다이어트는
식욕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고통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명절 전, 되도록 빨리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명절 전에 식단을 실천하며 새롭게 식습관을 형성한 뒤
명절 내내 명절 음식의 유혹을 참아낸다면
다이어트에서 얻는 효용감이 훨씬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절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전 부치기, 명절음식 만들기 등
며느리로서의 숙명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다.
간을 보는 것을 제외한 음식 만드는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
피할 수 없이 음식을 만들며 기름 냄새, 음식 냄새를 마음껏 맡게 되었고
이번 명절에 조상님이 된 것 같다며 가족들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면 나의 끼니는 어떻게 챙겼을까.
지방에서 하나하나 공수하기 어려울 수 있는 식단 재료들은
명절동안 먹을 만큼 사서 다듬은 뒤
캐리어에 바리바리 넣어서 끌고 지방까지 내려갔다.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시간이면 틈틈이 나만의 식단을 만들어 두었다가
다 같이 식사할 시간에 꺼내서 밥상 끄트머리에 펼쳐놓고서 먹었다.
가족과 함께 명절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상에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나눠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만든 음식을 먹으며 음식의 맛 등을 주제로 가족의 문화를 공유하며 대화에 참여하는 행위인데
나만 외따로 다른 음식들을 먹기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절 기간 동안의 식단 실천이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나와 가족들에게 상징적인 순간으로서 큰 의미가 되어주었다.
4박 5일간 유혹을 이겨낸 사실에
우선 내가 감동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다이어트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갈비, 전, 회, 전복구이, 떡국 등...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맛난 명절 음식들도 마다했는데
일상에서의 밥, 과자, 떡 같은 사소한 것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야 되겠느냐며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또한 가족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명절에 다이어트한다기에 의아해하며 성공 여부를 반신반의했던 가족들이
식단을 펼쳐놓고 먹는 모습을 보더니
명절 음식을 먹지 않고 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안타까워했지만 나의 목표를 격려하며 금세 적응하였다.
음식을 권유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만일 먹고 싶어 하며 고민하는 태도로 애매하게 굴었더라면
나를 위한답시고 이거 저거 조금씩만 먹어보라고 권할 게 틀림없었는데
독한 나의 모습에 강한 의지를 확인한 듯했다.
내가 명절 음식을 먹지 못해서 가장 안타까워하시고 서운해하시던 양가 어르신들도
끝까지 다이어트를 성공하라고 격려해 주셨고
이후에도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물으시며 가끔씩 응원해 주셨다.
이처럼 나는 명절을 통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위대한 도전을 하는 중임을
나와 가족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덤빌 계획이 있는 당신에게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다이어터임을 선언하고 각인시킬
좋은 계기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회식 자리도 좋다.
피할 수 없는 자리이면 더 좋다.
그 자리를 애써 피하며 뒤로 물러나지 말고 당당히 식단을 꺼내자.
그 순간에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치킨을 뜯을 수 없겠지만
물 잔을 앞에 둔 채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당신에게
앞으로 사무실에서 어느 누구도 초콜릿 쿠키나 단 음료를 권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더없이 든든한 다이어트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달래서 데리고 가기
일상의 공간에서
일상의 식습관을 벗어나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습관을 교정해 가며 노력하는 연습이 필요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본능은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럴 때마다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며 싸우기보다는
나 자신을 존중하며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도피하기,
둘째,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며 힘을 얻기,
셋째, 먹고 싶은 본능을 존중하며 흘려보내기
넷째, 물과 잠을 통해 효율 높이기 등을 통해서 말이다.
첫째,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 나는 내가 먹는 것 이외의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는 꽤 긴 시간의 간격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시간을 짧게 느끼며 보낼만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나는 좋아하는 넷플릭스와 웹툰, 가벼운 시리즈물 읽기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무료한데 자꾸 먹고 싶은 유혹이 들 때,
시간을 되도록 빨리 보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했다.
주로 과식을 하게 되는 금요일 밤이나 무언가를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주말에 이러한 방법이 유용했다.
잠시 드라마 폐인이 될지라도, 이 시간들을 비교적 덜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 나는 나의 의지를 북돋워줄 방법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성장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다.
도전, 변화 등을 화두로 삼은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불굴의 의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켰다.
지금의 고통과 힘듦은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들의 좋은 습관과 마음가짐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지금의 일상생활에 더욱 매진하고 집중함으로써
먹을 것을 통해 위안을 얻거나 도피하려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일이나 공부 자체에서 성취감을 얻음으로써 스스로 발전을 도모했다.
셋째, 먹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존중했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먹고 싶어질 때,
그 욕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충분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했다.
간혹 이 시간들을 견디며
먹방을 보거나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으며 참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게는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먹방을 보고 또 리스트화했던 메뉴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잔상으로 남아 다이어트가 끝난 뒤 죄다 실천(?)됨으로써
요요를 가속화할 뻔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메뉴는 사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의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욕망들조차도 과거의 것들로서
잠시 내 안에 머물다가 보내준다고 생각하는 편이 내게는 더 나았다.
예를 들어 갑자기 곱창이 먹고 싶어 졌다면
곱창의 맛과 그것을 먹었을 때의 분위기, 느낌 등을 생생히 떠올려 본다.
그 좋았던 기억을 되새김질해보며
'그래 오늘따라 그때가 그리워져서 먹고 싶어 졌구나'하고 스스로 그 욕망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는 '이미 아는 맛이니 굳이 다시 먹을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을 마무리하고
그 욕구가 더 머물러 있다가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그러면 정말로 그 욕구는 더 커지지 않고 어느새 사라져 있곤 했다.
그 욕구가 떠나지 않으면 분위기를 전환시킬만한
물 마시기 걷기 등 가벼운 행동을 했다.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속에 언젠가 꼭 먹고 말겠다는 욕망으로 저장이 되는데
그것을 막음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넷째, 물을 많이 마시고 되도록 잠을 많이 잤다.
생활 속에서 배가 고플 때는 틈틈이 물을 자주 마셨다.
물이야말로 배고픔을 달래고 다이어트 효율을 높여주는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했던 다이어트에서는 하루 1.5-2리터 정도의 물을 수시로 나눠 마실 것을 권장했다.
혹시라도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고역스러운 사람은
배고픔을, 꼬르륵거리는 시간을
살이 빠지는 시간이라고 머릿속에 입력하기를 강추한다.
'어머 내 뱃속이 꼬르륵 거리네?
와 지금 살이 완전 잘 빠지고 있구나!'
사실 이건 맞는 말이다, 정말이다.
그 소리를 반가워하게 된다면 훨씬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이어트 기간에는 잠을 많이, 푹 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이어트 자체의 효율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
일찍 잠들게 됨으로써 늦은 밤 야식을 먹고 싶어질 일 역시 사라지니
일석이조이다.
다이어트 산 넘고, 요요 산맥도 넘어보자
힘든 다이어트를 실천하며 사실 위의 방법이나 노력만으로도 힘들어질 때가 충분히 많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실수를 하는 동물이기에
어쩌면 완벽한 다이어트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이어트 기간을 성공적으로 보내더라도
그 이후에 이어서 오는 '요요'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란 누구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실제로 요요가 왔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감량한 상태로 나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다이어트 후 유지하는 법 - 요요 극복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사진 출처 :Unsplash의Alina Karpen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