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지온 May 15. 2023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리라

내게 글쓰기란

내게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온라인 비밀 카페가 있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져서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되지도 않은 이상한 이야기라도 지껄이고 나오는 대나무 숲 같은 공간이다. 다른 이들은 블로그를 그런 공간으로 이용하면서 글을 편히 쓰는 것 같은데, 나는 굳이 이렇게 어두침침한 곳에 숨어서 글을 써야만 하는지 나의 정도가 지나친 부끄러움이 개탄스러울 때가 있다. 어두컴컴한 이곳에 숨어서 같은 주제로 서 너번에 걸쳐 글을 쓰면서, 생각을 다듬고 글을 다듬어야만 내가 어느 정도 쓰고자 했던 이야기가 그 틀을 갖추게 되는데, 그러면 그제야 용기를 내서 최근에 만든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가끔씩 '무병(巫病)'이 이러할까 싶다. 천주교인으로서 이런 비유가 옳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는 점, 신내림 받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쓰지 않으면 그로 인한 미칠듯한 답답함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사한 듯하다. 쓰지 않는 날들에, 나는 깊은 괴로움을 느끼곤 한다. 문득 떠오르는 글감을 지나쳐 보내거나 쓰는 것을 잊으려고 묻어두거나 손을 놓는 것은 내 존재를 뒤흔들 만큼 괴롭고 죄책감이 드는 행동이다. 차라리 잘 안 써지는 글을 껴안고서 머리를 싸매는 며칠 간이 행복하다. 간혹 잊은 듯 살다가도 다시 이 '무병'이 도지면 끊임없이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해야만 하는 것을 끊임없이 피해 다니는 느낌. 그러다가도 쓸 것이 생각나, 너무나도 쓰고 싶은 마음에 폭풍처럼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쓴 날이면 결과물의 질과 상관없이 그날 밤 두 다리 뻗고 단잠을 푹 잘 수 있다. 그러기에 내게 글쓰기란 무병 같다는 말 외에 더 괜찮은 말로 설명할 것이 딱히 생각나지를 않는다.

좋은 글을 쓰게 됐을 때 얻는 만족감이란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은 것에 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 기쁨의 순간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충 하고 싶지 않아서 글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역스러울 때가 있다. 세인의 평가 또한 너무나 중요하기에 내 안에서 끄집어낸 부끄러운 이 녀석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마치 발가벗겨진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것이 나는 너무나 두려워서, 쓰는 것도 힘들지만 세상에 내놓기란 더 힘들다.

하지만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손맛'이라고 하는 것을, 글이니 '글맛'이라고 해야 맞을 그것을 나는 알아버렸다. 이미 어릴 적 백일장에서 이런저런 상을 받았을 때부터 조금은 느꼈던 것이지만, 갓 대학에 입학해 사범대생임에도 불구하고 패기롭게 '소설 창작의 이해'라는 국문과 전공수업을 교양으로 신청해 들었던 그때, 나는 너무나도 확실히 맛보아버렸다.

약 한 달 동안 단편 소설 하나를 만들어 제출하면 그것을 품평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해 학점을 매기는 방식의 수업이었기에, 나도 긴 시간을 머리를 싸매고 들어앉아 되지도 않은 글솜씨를 부려 인생의 첫 작품을 완성해냈다. 드디어 내 작품으로 수업 시간에 품평회를 진행하게 됐을 때, 국문학도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타 속에서 교수님은 내 작품을 최고의 작품이라 추켜세우셨다. 그때의 희열은 나의 온 우주를 뒤흔들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교수님은 매년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써온 소설 중 괜찮은 것들 대여섯 작품 엮어서 책으로 출판해 내셨는데, 내 소설 역시 책에 실리게 되었다. 시내 대형서점에 납품될 수 있는 책에 내 소설이 실렸다는 것은, 스무 살 새내기에게 글쟁이로서 살고 싶다는 무병을 앓게 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로 절대로 그만큼, 아니 그와 비슷하게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을 쓸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쓴 소설들은 혹평을 받았고 나는 그 부정적인 평가들을 견뎌낼 만큼의 뱃심이 전혀 없었기에 무너져 내렸다. 일단 내게는 습작 기간이 전무했고, 소설 창작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시간들도 없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나는 원고지 10매를 넘기지 않는 시만 써왔기 때문이다. 나는 긴 글을 쓰는 법을 몰랐다. 우연히 발견한 괜찮은 소재로 되는대로 엮어냈는데, 잘 썼다고 평가를 들으니 마치 로또를 맞은 것 같은 상황이었을 뿐, 다시 이런 작품을 쓰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다. 계속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쓰는 족족 전작에 비해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 글들만 나올 뿐이니,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아니 글을 쓸 용기가 사라졌다.

그 뒤로 약 20년 동안 정서적인 방황을 해온 것 같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기도를 하며, 제 앞에 놓인 잔을 치워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글만 안 써도, 다른 것들을 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속 한편에 자리 잡은 그 손맛에 대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혼자서 글을 쓰는 카페를 만들고, 내 나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글쓰기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반영해 일부러 자율연수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계획서 상의 연수 주제는 '글쓰기 교육 연구'였다. 뭐라도 쓰자, 쓰면서 느끼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작은 문예부라도 여는 것,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학교에서 만나는 글 잘 쓰는 아이들에게 또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표면적인 목표이고, 내면적인 목표는 그동안 손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바닥을 쳤는데, 다시 못 쓸게 무엇인가 하다가도, 짧은 글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조차,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아예 놓지 못했던 '글부심'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동안 내 발목을 잡아온 생각은 처음 작품을 넘어서는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새로 시작하며, 그 작품을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과거를 잘 아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예전에 썼던 그 소설, 사실은 진짜 못 쓴 거였어. 나는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서, 그냥 작품을 쓸 거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시 그 희열을 느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뿌듯해하기 위해 글을 썼던 시간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냥 쓴다.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견뎌낼 뱃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으니.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내 작품이 지닌 단점에 대해 스스로 혹평하겠다. 습작 기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기꺼이 바닥으로 기어들어가서, 다시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기꺼이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