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백수가 되어 삶을 재정비하다.
작년 말 퇴사하고
처음으로 학교, 직장, 어디에도 정식으로 소속되지 않은 채로
다음 행선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로
백수로서 시간을 보냈다.
불안과 두려움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누려보는 이 "쉼" 속에서 얻은 게 얼마나 많은지.
벚꽃과 따뜻한 봄 공기가 주는 에너지를 빌려
이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이 시간 동안 어떤 것들을 얻었는지 써보려 한다.
(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쉴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담아!)
고3 때도 매주 예배를 빠지는 법이 없었던 난데
대학에 합격한 이후 점점 예배에 소홀해졌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예배에 가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졌다.
누가 종교가 있냐 물으면 크리스천이라 답하지만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랬던 내가 이 시기를 통해 기도하며 한 공동체에 정착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마음을 두는 공동체,
내가 내 의지로 주일에 시간을 내어 드리는 예배가 생김에 놀랍고 감사하다.
삶의 중심이 바로 서고 있어 기쁘다.
나의 현재 상황이 불안정함에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어, 조급하지 않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나는 요리를 못했다.
내가 한 음식이 엄청 맛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고,
요리 잘하는 동생을 보면 부러웠지만 딱히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쉬면서 돈을 아끼기 시작하고 시간이 많으니
밖에서 무언가를 사먹는 게 너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생하고 엄마한테
내가 하고 싶은 음식 레시피를 물어보기 시작하며
하나 둘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근데 놀랍게도 요리하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운 거다.
요리하는 시간 동안 완전한 몰입을 통해 잡다한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경험이,
알록달록한 자연 식재료가 주는 시각적 만족감이 어찌나 힐링이 되던지.
이게 Food Therapy 구나 싶었다.
이 기쁨이 커서
망한 요리도 꽤나 많았지만 계속 시도하게 되었고,
(백수라서 매일 요리할 수 있었다 ㅋㅋㅋ)
여기에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기까지 하니까
기쁨이 더해져 거의 매일 요리했다.
그러니 실력은 나날이 늘고
이제는 배달을 시키고 외부 음식을 먹는 게 어색한 일이 되었다.
매일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체크하고 어떤 요리를 할까 고민한다.
이렇게 살림꾼이 된 나 자신이 아직도 낯설고 기특하다.
요리는 운동과 더불어 가장 빠르게 이룰 수 있는 성취더라.
이 성취감이 이 기간 나를 많이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고 뒷정리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내게 큰 행복이 되어 행복하다.
글이 길어졌다.
3,4번은 다음 글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