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지킨 자연의 나라, 스위스로 떠나는 가족여행 #4
융프라우요흐는 4,100m가 넘는 묀히와 융프라우 산 사이에 말의 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능선 위에 올라서 있는 암반으로 1912년에 기차 터널이 뚫린 후 1924년에 전망대(Sphinx Observatory)가 완공되었다. 융프라우철도 회사는 오늘날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이라는 브랜딩으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고 이 산꼭대기에는 매년 100만 명이 넘게 찾아온다.
해발 3,454m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에서 관광객들은 기차역을 출발해서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루트로 걸어 다니게 된다. 'Tour'라는 간판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전체적으로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의 위, 아래와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어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파란 하늘에 반한 나는 일단 가족들을 재촉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옥상으로 향했다.
이렇게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융프라우요흐에서 일 년에 며칠이나 되겠는가. 고산 지대에서는 순식간에 구름이 끼거나 눈, 비가 내릴 수 있다. 실내에서 밖을 보는 줄 알았던 딸이 전망대 옥상의 야외로 나간다는 말에 깜짝 놀랐고 덥다며 늘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던 아들도 두터운 재킷과 긴 바지를 꺼내 덧입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이 곳은 해발 3천 미터가 넘어 야외 전망대는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 쌀쌀하다.
스핑크스 전망대 옥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장엄하게 뻗은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이다.
알프스 빙하 중 가장 큰 알레치 빙하는 여기서부터 거대하게 굽은 협곡을 따라 약 23km에 걸쳐 스위스 발레(Valais) 주로 흘러 내려간다.
융프라우 지역의 만년설이 만들어낸 얼음이 눈 앞에서 하얀 강을 이루어 뻗어 내려가는 풍경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분명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수백 미터 두께의 얼음이 압력에 못 이겨 보이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건데 왜 '얼음의 강(氷河)'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새하얀 눈과 얼음이 반사하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은 제대로 뜨기 어려울 정도였고 그 와중에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사진을 찍는 손은 덜덜 떨렸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빙하가 만들어내는 색깔의 향연은 산 아래서 보던 초록과 잿빛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알레치 빙하는 2001년에 스위스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록되었고 2007년에 범위가 확장되었다.
융프라우-알레치-비츠호른(Jungfrau-Aletsch-Bietschhorn)은 2007년에 유산의 범위가 동서로 확장되어 면적이 기존의 53,900㏊에서 82,400㏊로 늘어났다. 알프스에서 빙하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이곳에 있는 유라시아 대륙 최대 규모의 빙하는 알프스 고산지대(High Alps)의 형성 과정을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곳에는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점점 사라짐으로써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유산은 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산이나 빙하의 형성 및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생태학적, 생물학적 현상과 특히 식물의 생태천이(plant succession)에 있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융프라우-알레치-비츠호른의 멋진 경관은 유럽의 예술, 문학, 등산, 알프스 관광산업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처 :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한편, 알레치 빙하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지난 150여 년 간 길이는 약 3km, 두께는 약 300m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구에서 이 아름다운 빙하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가 없다. 올해는 남극의 기온이 20도까지 치솟았다는데, 지금 인류는 지구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스핑크스 전망대 옥상에서 알레치 빙하를 중심으로 360도 풍경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알레치 빙하의 반대 방향인 북쪽 평야지대 방향으로 돌아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초록빛 낮은 산들과 평야가 수평선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가운데 바로 아래 산기슭에는 우리가 조금 전에 머물렀던 클라이네 샤이덱이 눈에 들어왔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다는 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인데 스위스에서는 반대이다. 스위스 남쪽은 수천 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이탈리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북쪽은 평야지대가 독일로 뻗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이탈리아와의 연결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알프스로 숨어들어 이탈리아와 연결된 교량과 도로, 터널을 모두 폭파해 버리겠다는 스위스인들의 '위협'에 실익이 없다고 보고 스위스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좀 더 거슬러 가서 로마 초기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를 지나 갈리아(프랑스)를 통과해 지금의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했다. 로마의 어느 누구도 카르타고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 들어올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로마는 수도가 함락 직전까지 가는 타격을 입었다.
이렇게 높고 험난해 방어벽 용도 외에는 '별 쓸모없던' 산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어 스위스 경제를 받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산 꼭대기의 서늘한 바람은 따뜻한 햇살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신선했고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하늘은 초록빛 산이며 들판과 어우러져 지평선에 이르기까지 시원한 광경을 펼쳐 보였다.
자연이 빚은 작품이 인간의 의지로 빛을 본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보니 눈 앞에 거대하지만 날카롭게 솟은 산이 파란 하늘 아래 당당히 등장했다.
융프라우였다.
해발 4,158미터까지 우뚝 솟은 이 산은 1811년에 스위스의 메이어 형제(Meyer)가 처음으로 정복했지만 1865년이 되어서야 등산 루트가 열렸다고 한다. 융프라우요흐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등산으로 오르면 몇 시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는데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도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저 전망대에서 웅장한 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으로 족했다. 여기는 인터라켄 평야지대의 반대쪽이다. 달의 공전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와 같아 우리가 늘 달의 한쪽 면만 보듯 눈 앞에 보이는 융프라우의 ‘뒷모습’은 이 곳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융프라우요흐에서 보는 산은 인터라켄의 호숫가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양이라 지리 감각이 없다면 ‘저 산이 융프라우 맞아?’라고 물을 정도이다.
융프라우요흐의 스핑크스 전망대는 360도에 걸쳐 눈을 떼기 어려운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 보였다.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야외 전망대를 돌면서 남쪽의 빙하지대부터 서쪽의 융프라우 산, 북쪽의 평야지대까지 멀리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풍경도 내 몸이 편안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융프라우의 풍경에 감탄하며 서 있는데 점점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습이 답답해져 왔다. 아이들도 갑자기 빨리 내려가고 싶다고 아우성이고 모두들 조금씩 짜증이 늘고 있었다. 두통과 메스꺼움, 가슴 답답함...
고산병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라우터브루넨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는 표고차가 거의 3천 미터에 이르는데, 우리는 몸을 적응시키며 올라온 것도 아니고 기차를 타고 단숨에 올라왔다. 산소가 희박해진 고지대 특성상 몸이 순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이는 것. 특히, 딸이 많이 힘들어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싫어했는데 이 고산병 증세를 악화시킨 액티비티가 있었으니 바로 융프라우의 눈썰매였다.
(위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곳이 눈썰매장)
전망대에서 내려와 50미터가량 빙하 방향으로 터널을 걸어 나오면 빙하의 최상단부에 튜브 눈썰매와 스키, 스노우 보드, 심지어 짚와이어를 탈 수 있는 레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융프라우철도 회사가 오랜 세월 동안 이 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왔다는데, 아무리 스키의 나라라도 이런 고산지대에 액티비티 시설을 만들다니 대단하다.
전망대 터널 밖으로 걸어 나와서 눈썰매장까지는 다시 100여 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저지대 평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푹푹 꺼지는 눈밭을 걷자니 가뜩이나 힘든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하얀 눈에 반사된 강렬한 햇빛은 남캘리포니아의 햇빛은 저리 가라였다. 나는 원래 특별한 준비 없이 여행을 다니긴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집사람의 선글라스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옆을 돌아보니 딸은 잔뜩 찡그리고 세상을 잃은 표정인데 아들은 ‘눈썰매’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신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몸이 힘들 대로 힘들었지만 나는 다리를 질질 끌고 가서 눈썰매장의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10명 남짓 서 있는 줄이 줄어들 기미가 없어 뭔가 이상했다. 슬쩍 짜증이 나서 앞에 가서 물어보니 매표소 직원이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소리를 했다.
‘모든 장비가 대여 중이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썰매 대여가 시간제도 아니고 장비를 한번 빌리면 무제한이라 언제 반납될지 모른다는 것.
아들은 너무 실망을 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였고 나도 적잖이 당황하여 어떻게 할까... 하면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오기가 샘물처럼 분출했고 아들의 눈물 앞에서 강인한 어머니로 돌변했다.
‘어떡하긴! 빈 썰매 금방 나올 거야. 기다리자.’
사실 ‘장비 대여시간 무제한'이라는 말이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인지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금방 알 수 있다. 걷는 것만으로도 숨차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고산 지대에서 몇 시간이고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눈썰매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큰 튜브 모양의 눈썰매를 다시 끌고 올라와야 하는 게 힘들어 대부분 사람들이 2-3번 타고나면 지쳐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과연 우리가 기다린 지 10분도 안되어 장비가 속속 리턴되고 있었고 나는 아내의 혜안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작 허탈했던 건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스위스 사람들의 자세.
여기서 눈썰매장을 하루 이틀 운영한 것도 아닐 텐데, 운영 경험이 있으니 장비가 다 나갔다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여 시간이 ‘무제한’인 장비가 다 나갔으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니, 융통성 면에서 어쩜 이리 똑같이 ‘유러피언’ 스타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아들은 재빨리 튜브 썰매를 하나 꿰차고 신나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제야 집사람도 몸이 힘들다며 뒤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썰매 길 옆에는 썰매를 끌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운행되고 있었는데 안전관리 요원이 전담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빙워크가 끝나는 곳 즉, 썰매 출발 지점에 각종 장비가 조금이라도 걸리면 비상벨이 울리며 기계가 멈춰서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마다 무빙워크의 중간 지점에 서 있던 아이들이 기계가 왜 서는지 영문도 모르고 경사길에 헉헉대며 튜브를 끌고 올라오는데 이걸 보기가 참 안쓰러웠다.
보다 못한 나는 기계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썰매며 장비들을 빨리 옆으로 치워 주었으나, 숨이 더 가쁘고 머리가 무거워져서 몇 번 하다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몇 시간이라도 탈 것 같은 기세로 달려간 아들도 딱 네 번 만에 두 손을 들었다.(그래도 거의 1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후 아들은 기차 타고 저지대로 내려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머리가 아프다며 나에게 기대어 걸었다. 내 몸도 점점 천근만근이 되어갔다.
눈썰매장에서 동생을 기다리느라 표정이 이미 좀비가 된 딸과 역시 입술이 파래져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부인을 보며 약간은 난감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VIP pass에 포함된 쿠폰으로 컵라면을 먹어야 했다.
컵라면 1개에 7.9프랑이라 점심도 거른 나로서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최선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매점의 다른 먹거리들은 한눈에 봐도 별로였다.
눈물 젖은(?) 컵라면.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 사람들은 죄다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물어보지 않아도 모두 쿠폰 동지들임을 알 수 있다.
'이거 그냥 쿠폰만 보여주면 되나요?'
'잠시만요, 이걸 내시면 돼요.'
한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컵라면을 어떻게 받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몇 장의 쿠폰 중에서 컵라면 쿠폰을 찾아 드렸다. 융프라우의 컵라면 부대... 진풍경이 아닐 수 없으나 역시 한국인은 어쩔 수 없는 동질감이 있나 보다.
매점 카운터의 종업원도 익숙하게 쿠폰을 받은 후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차례차례 내주고 있었다. 종업원들이 간단한 한국어도 구사해 신기했다. 몇몇 유럽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컵라면을 후후 불면서 먹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나 할까.
문제는 컵라면을 다 먹었는데도 아이들이 여전히 몸이 힘들다고 난리였고, 융프라우 투어는 이제 절반 정도 지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는 '그놈의' 눈썰매장에 저주를 퍼부으면서 아이들에게는 화살표 방향이 나가는 길이라고 속여 가족들을 힘들게 얼음 동굴 쪽으로 밀어 넣었다.
전망대에서 얼음 동굴로 가는 지하 통로에는 융프라우 철도를 건설한 스위스의 철도왕이자 기업가인 아돌프 구에르-첼러(Adolf Guyer-Zeller)의 동상과 철도를 건설할 당시를 보여주는 사진들, 그리고 폭파 사고 등으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지나는 동안 저절로 숙연해진다.
얼음 동굴은 천장부터 벽면, 바닥까지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 아래 지하에 있긴 하지만 이 동굴의 기온도 족히 영하 5도는 되는 듯했다. 미끌미끌한 바닥에 여러 가지 얼음 조각을 보며 깔깔깔 웃으며 걷다 보니 아이들도 두통과 메스꺼움 증세가 좀 완화되는 것 같았다.
동굴 안에는 곳곳에 얼음으로 된 조각상이 놓여 있고 이글루에서 봄직한 얼음 벽돌로 벽들이 장식이 되어 있다. 여름에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면 일 년 365일 내내 얼음이라는 말이렸다. 겨울왕국처럼 사방이 얼음으로 둘러싸인 얼음 동굴은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얼음 동굴을 통과하면 투어의 마지막 단계인 야외 뷰 포인트로 나가게 된다.
밖으로 또 나간다는 말에 딸은 손사래를 치며 실내에 앉아 있겠다고 물러섰다. 집사람 역시 20여 년 전 배낭여행 때 다 가본 곳이라며 안 나가려고 했지만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주겠다며 마음을 바꿔 나와 주었다. 20년 동안 바뀐 것은 없겠지만 혼자 왔던 곳에 3명을 데리고 다시 왔으니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눈썰매장 이후로 내게 기대어 걷던 아들이 이번에는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아들아, 20 - 30년 후 너도 네 가족을 만들게 된다면 이 곳에 같이 와서 오늘 아빠와 함께 올랐던 순간을 기억해 다오.’
아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속으로 읊은 내 마음이었다.
이 곳은 인공적인 전망대 옥상이 아닌 융프라우요흐 능선 위 빙하의 시작점이다. 스핑크스 전망대와 뷰는 비슷하지만 막상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보는 융프라우 산과 알레치 빙하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남서쪽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융프라우는 꼭대기부터 그림자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전망대 위에서는 다소 오른쪽으로 치우쳐 보였던 빙하도 여기서는 정면으로 달려 나가는 듯했다.
나무 막대기와 얇은 밧줄로 표시된 약해 보이는 가이드 펜스 너머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몸이 저 멀리 보이는 빙하까지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스핑크스 전망대가 인공적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서는 내가 산이나 빙하와 하나가 된 것 같다.
드디어 융프라우 투어가 끝났고 이제 정말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기차역으로 내려가니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VIP pass로는 돌아오는 기차 시간과 좌석을 무료로 예약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복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예약을 하지 않았으므로 일단 '선착순' 줄에 섰다. (복귀 편을 미리 예약하면 ‘예약자’ 줄에 선다.)
다행히 예약 승객들이 탄 열차에 이어 선착순 승객을 위한 차량도 바로 출발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만, 객차 안이 만석으로 북적이고 좌석도 선착순으로 앉기 때문에 가족끼리 같이 앉을 수는 없었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까지는 15분 남짓만 내려오면 되기 때문에 아이들을 달래 가며 여기저기 떨어진 빈 좌석에 앉았다. 고산병 증세 때문에 모두들 말을 잃었다.
환승을 포함해 약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까지 내려오고 나니 그토록 우리를 괴롭혔던 고산병 증세가 씻은 듯 없어졌고 아이들도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저녁은 알프스 고산 지대에 힘들게(?) 다녀온 가족들을 위해 라우터브루넨에서 나름 인기가 있다는 오버랜드(Oberland) 호텔의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들어갔다. 파스타와 뢰티(감자채 볶음 전), 소시지 등으로 구성된 저녁식사를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맛도 좋았던 데다 종업원들이 꽤 친절해서 하루를 잘 마무리한 기분이었다. 끝이 좋으면 과정도 좋아진다.
저녁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에서 별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에 나왔던 순수한 목동도 저런 별을 봤던 것 아닐까.
시원한 밤바람이 좋아 내친김에 숙소를 지나 슈타우프바흐 폭포(Staubbachfall) 맞은편까지 가 보았다. 마을은 고요했고 밤하늘 뒤로 멀리 라우터브루넨 협곡의 바위 절벽이 시커멓게 드리워져 있는 가운데,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화려한 조명이 받아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서늘한 밤공기는 폐를 정화시켜 주는 기분이었고 작은 웃음소리마저 협곡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듯 크게 울렸다.
그렇게 별이 쏟아지는 라우터브루넨의 밤이 깊어갔다.
나는 다음날도 하늘이 맑게 개어 그린델발트와 피르스트의 절경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침대에 쓰러졌다.
하지만 융프라우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