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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경 Jul 26. 2020

때로는 밖으로 꺼내봐야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

7개월간의 카페 파트타이머를 마치며


최근 들어서 모든 일에 대해 차근차근 매듭짓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즉흥적인 성향이라 시작은 많이 했지만 끝을 내본 기억이 많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시작보다 끝에 집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매듭 지을 일은 나의 첫 카페 파트타이머. 

단기로만 알바를 해오던 내가 7개월 동안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출근날, 에잇 이사님한테는 정 안 줘야지
왜 이렇게 신나면서도 바보같이 웃고 있는걸까?

한껏 웃어보는 첫 출근날, 면접 이후로 카페 이사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온화하셨던 이사님은 일을 할 때 굉장히 예민해지는 분이셨다. 바빠지는 점심시간, 피크 타임이 되면 이사님의 정신은 예민의 끝판왕에 다다라있었다. 나는 분명히 첫 출근이었는데 내가 마치 '한 달이나 근무해놓고 아직도 버벅거리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빨리하는 것에 익숙한 이사님께서는 내가 로봇처럼 정해진 매뉴얼대로 착착 움직이길 바라셨다. 그래서 첫날 이후로 나는 항상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일을 했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에잇 이사님한테는 정 안 줘야지'


라떼 아트보다 늘어가는 건 잔소리 한 귀로 흘리는 능력


뭐든지 '빠르고 맛있게'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이사님께 일을 배우면서 일단 빠르게 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일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외워야 될 레시피도 다양했는데 그건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벽에 붙여놓은 커닝 페이퍼를 눈치껏 보며 적응해갔다. 알바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참 고맙다.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몸과 왼쪽을 향해있는 시선 다급하다!!

빠르게 하려다 보니 뇌 정지가 와서 뭘 해야 될지 모른다거나 막 허둥지둥거리다가 혼날 때가 많았다. 손이 급해져야 되는데 자꾸 마음이 급해지는 탓이었다. 당연히 실수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했지만 감정적으로 하는 말들에는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 달을 하고 나니 조금씩 꾸중을 듣는 것에 강인해졌다.

뭐랄까.. 좋게 말하면 모든 말을 감정적으로 듣지 않는 능력을 터득했다. 한창 바빠지는 점심시간에는 그냥 나는 로봇이겠거니 하고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일을 했다. 그렇게 일에 조금씩 적응하고 나니 여유가 생기면서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야잼 햄치즈 할아버지와 4층 사장님과 가까워지다
할아버지맛 비스킷

점심이 지나갈 때쯤 매일 점심으로 카야 햄치즈 샌드위치를 드시러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부턴가 할아버지께서 내게 과자 두 봉지를 건네셨다.


"내 간식은 이거고, 니 간식은 이거!"


하시면서 웃는 모양의 비스킷 두 봉지를 내 손에 꼭 쥐여주신다. 비스킷 맛은 얄궂은 초콜릿이 사이에 끼여있는 딱 할아버지 비스킷 맛이다. 맛은 그다지 없지만 그 비스킷을 받아 들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25살에 아가라고 불려보는 건 낯설지만 따듯했고 매일같이 주머니에 과자를 챙겼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감사했다.


카야 햄치즈 할아버지보다 꾸준히, 절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시는 분이 계셨다.


건물 4층 사장님이었다. 워낙 단골손님이라 4층 사장님만의 선불 장부가 있을 정도였다. 한 번에 4만 원씩 결제를 받고 나면 우리는 매일 아메리카노를 시키신 횟수만큼 장부에 표기를 했고 4만 원이 넘어갈 때마다 다시 결제를 받았다.


사장님과는 딱히 에피소드랄게 없었다. 나는 그저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 사이, 하루에 3번씩 우리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업무를 보시는 사장님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이럴 거면 회사에 커피머신을 두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가끔씩 업무 보고를 하러 찾아오는 직원들한테 커피 한 잔을 안 사주는 것도 참 한결같다는 생각.


사람들과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도 느낄 수 있었던 것들


내가 일했던 카페는 회사가 많은 골목에 위치해있어서 점심시간이 되면 단골손님 말고도 다양한 회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항상 팀원들과 함께 카페에 들렀다. 나는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서빙을 해주는 사람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팀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카드를 툭 하고 건네는 팀장님이 있는 회사는 사람들 말 수가 적었고 드를 돌려받을 때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팀장님이 있는 회사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구경하고 단골손님과의 말 수도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로 근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카페는 주로 아침, 점심에만 사람이 붐볐다. 단골손님들도 점심때쯤 오셨다가 3시 이전에 떠나고, 그때가 되면 카페가 조용해서 이사님도 슬슬 다른 볼일을 보러 가시기 때문에 6시 마감까지는 나 혼자 남게 됐다. 사실상 그 시간에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카페 지킴이 겸 마감 청소부 역할을 했다.


때로는 밖으로 꺼내봐야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
2020년 1월. 마감하고 집 가는 길

처음 근무를 시작할 때는 6시 마감을 하고 나와도 해가 지지 않았었다. 그때는 더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감을 하고 나면 아주 깜깜하고 추운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또 마감을 하고도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사장님과 이사님을 마주 보고 얘기를 드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곧 일을 그만둬야 될 것 같다고.


그 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알바 그만두는 건데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을 내뱉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몰려왔다. 아주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웠다. 내가 첫 출근날 무의식적으로 다짐했었던 '에잇 이사님께는 정 안 줘야지'라는 마음은 내가 조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어느 순간 정이 들어있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정신이 바짝 들어있었던 순간을 지나서

여유가 생기고 그저 시간을 때우게 되던 순간,

사장님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듣던 순간,

그러면서 이 일을 통해 단숨에 사라지는 돈 이외에 어떤 것을 얻었는지 생각하게 되던 순간,

이사님의 국내 여행 이야기를 듣던 순간,

사장님과 이사님이 부부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순간,

발랄 상큼한 이사님과 과묵 다정한 사장님의 케미를 느끼게 된 순간,

점심으로 챙겨주신 따듯한 밥과 카레 하나에 울컥하던 순간,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에게 해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듣던 순간.

마음은 한순간에 열린 게 아니었다. 빠르게 흘렀던 7개월 동안 우리 사이에는 꽤나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나눈 이야기와 감정들 때문인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정이 들어 있었다.


정들었던 카페 미아미고, 그리고 사장님과 이사님.

7개월간의 카페 근무를 마치며.

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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