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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경 Jun 03. 2020

그냥 돼지갈비 같이 먹으러 가고 싶어

소소한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오늘 저녁은 봄날의 저녁 같았다. 쌀쌀한 듯 따듯한 그런 봄 저녁. 이런 날씨가 오면 꼭 하고 싶은 게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회사에서 어땠는지, 엄마는 오늘 어땠는지,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걷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딱 봄날 저녁 같아."

"아직 춥던데~ 따뜻하게 입었나"

"내가 코트 입어서 딱 좋은 건가? 따뜻하게 입었지"

"아이고 이쁘다 이쁘다 맨날 춥게 다녀서 걱정했더만 이쁘다 우리 딸"

"이제 내 몸 잘 챙긴다 엄마~ 오늘 같은 날씨에 걷다 보면 꼭 하고 싶은 생각난다?"

"뭔데?"


"엄마랑 아빠랑 오빠랑 나까지, 우리 넷이 모여서 돼지갈비 먹으러 가는 거.


  날씨도 좋고 슬렁슬렁 걸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게 그렇게 하고 싶어 지네.

  아마도 어릴 때 기억 때문일까?

  그때는 치킨도, 돼지갈비도 먹고 싶을 때마다 못 먹고 상 타 온 날 같이 축하할 날에만 먹었잖아.

  그래서 가끔씩 외식하는 날이면 항상 우리집 근처에 있는 돼지갈빗집 거기로 갔잖아.

  나는 어렸어서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오빠랑 둘이 방석 10개씩 쌓아서 앉던 거랑, 후식으로 있는 아이스크림 항상 2단으로 만들어 먹던 건 기억나. 그리고 손님 없는 안 쪽 방에 들어가서 장난치다 보면 엄마가 장난 고만 치고 와서 밥 먹어라 하던 것도 생각나고.

  그런 소소한 것들이 나는 참 좋았던 것 같아.

  나의 어린 시절은 소소한 행복으로 꽉 차있었던 것 같아.

  다 커서 돌아보는데, 그 소소한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엄마 때문일 거야.

  엄마는 기억할지 모르겠다. 엄마가 예전에 편지에 이렇게 써줬었어.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부족함이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그 말, 아직 기억해.

  빼빼로를 종류별로 사서 네게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는 그 말, 그 말도 아직 기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던 그 말, 그것도 아직 기억해.

  내가 그 말들을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말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보여줬던 행동들 때문이야.

  아주 어렸을 때 생일 초대장 하나하나 설레는 마음으로 같이 만들어 준거, 축하해주러 왔던 친구들이랑 마또 놀이를 할 수 있게 해 준 거, 그렇게 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설렘과 기쁨을 모두 누릴 수 있게 해 준 거. 그리고 우리 남똥이 하면서 언제나 따듯하게 웃어주던 거, 항상 기다려주던 거, 아직까지도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거.

  엄마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내게 모든 걸 알려주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다 커서도 불평불만보다는 좋은 감정들을 더 많이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나 봐.

  오늘은 봄날 저녁에 우리 가족이랑 돼지갈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고맙고 보고 싶다 엄마.


  그냥 오늘따라 그런 소소한 거 같이 하고 싶어."


"맞나 우리 딸, 보고 싶네~"


떨어져 지낸 지 5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그냥 돼지갈비 먹고 싶다는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먼저 말해주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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