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계절, 슬그머니 불어오는 따듯한 바람에는 그 계절에만 나는 냄새가 담겨있다. 그리고 내겐 냄새로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꼬마에겐 더할 나위 없었던 나무집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은 100평짜리(?) 집이었다.집이 50평, 마당이 50평. 사실 정확한 크기는 모르겠지만 어렸던 내 기억 속에 우리 집은 꽤 넓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니 그냥 크니까 100평!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집 만한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고집 옆으로는 천이 흘렀다.
우리 집은역사가 있는 집이었다. 정말 오래전에 지어져서 아직까지도 보존되어 있는 신기한 집이었다. 크기는 컸지만 거실은 보일러도 깔려있지 않은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어서 겨울이면 연탄을 때곤 했다. 집안에는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있었다.
사계절 내내 놀이터가 되어줬던
마당의 양쪽에는 아주 큰 나무가 있었다. 한쪽에는 살구나무, 다른 한쪽에는 감나무. 초등학생일 때의 내 몸보다 2배는 훌쩍 넘는 기둥을 가지고 있는 나무였다. 높이는 고개를 한 껏 들고 몸을 뒤로 젖혀야 꼭대기가 보일만큼 컸다.
봄이면 담장 밖으로 살구가 떨어지고, 여름이면 매미들이 탈피하고 남겨놓고 간 매미의 허물을 나무에서 떼어내 브로치처럼 달아보면서 놀았다. 가을이면 엄청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서 감을 따먹었고 겨울이면 연탄난로 위에서 귤을 구워 먹었다. 그때의 우리 집은 어렸던 우리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줬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었고 한 켠에는 미니 텃밭이 있어서 교과서에도 알려주지 않는 지렁이 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직접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2개 있었다. 작은 문과 대문이었다. 보통은 작은 문을 열고서 마당에 박혀있는 돌 길을 따라 걸은 후에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은 사계절 동안 한번 열릴까 말까 했는데 그 계절이 바로 여름이었다.
여름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기억
아직도 기억나는 여름날의 한 장면이 있다.
서울에 사는 고모부와 사촌 동생 2명이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고모부는 집 옆에 있는 천에서 산책을 한다고 나가고 엄마와 아빠는 마당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대문을 여는 거였다. 정말 오래간만에 대문을 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그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마치 담장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집이 세상 밖으로 훤하게 드러났다.문을 열고 미리 사둔 테이블 벤치를 설치했다. 아이들 네 명에 어른 세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파라솔이 테이블 중앙에 끼워지고 테이블 양 쪽으로는 긴 의자가 설치되었다.
활짝 열어 젖혀진 우리집 대문 바로 앞에 설치된바비큐파티장.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벤치에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천에 산책을 나갔던 고모부는 한 손에 단호박을 들고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왔다. 해는 조금씩 지고 여름 바람이 불었다. 살에 느껴지는 온도가 조금 뜨거웠다. 땀이 나려고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 식어버리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