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ee Oct 02. 2022

수많은 삶이 쌓인 푸른 언덕

"불편한 편의점"의 배경, 청파동

내 본적은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아나운서란 꿈을 갖고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진학한 난 학내 방송국 아나운서에 지원한 적이 있다. 서류 및 필기 전형에 통과하여 1차 면접을 보러 갔는데 동아리 면접치고는 꽤나 압박 면접이었다. 같은 조로 들어간 동기가 지각을 했는지 한참을 면접관들에게 시달렸다. ‘방송은 1분이라도 늦으면 청취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안일한 삶의 태도로 살아왔느냐’는 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었고, 이미 십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친구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낸 것 같다.


다음은 내 차례.

서류에 대충적은 ‘본적’이 문제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때까지 나는 ‘본적’의 개념이 없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누군가 내게 본적을 물은 적이 없었고, 내 ‘뿌리’는 미취학 아동일 때 맞벌이를 한 부모님이 잠시 맡겨두어 생활한 적이 있는 외가댁이자, 명절마다 찾아간 ‘파주’정도였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게 시골 하면 외갓집뿐이다.) 혹은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산 ‘일산’이었다. 그래서 학내 방송국 지원서 서류에 본적 란을 보고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뜻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 주소를 적어서 제출해 버린 것이다.


“지원자는 본적의 개념을 모르나요?”

“이 아파트는 본인이 태어난 곳인가?”

“아버지가 이 아파트에서 태어나셨나요?”

“본적의 개념에 대해서 정의 내려 보세요.”

“그렇게 상식이 없어서야…”


한바탕의 포화를 맞고 면접장을 나온 나는 본적 란에 적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1차 면접에 합격했단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2차 면접 전형에는 가지 않겠단 답변을 하고 그날밤 아빠에게 본적에 대해 물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난 ‘서울’에 뿌리를 둔 사람인 듯하지만, 서울에 대해 전혀 모른다. 스무 살이 되어 신촌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종로로 회사를 다니며 본 서울의 단면이 전부인 서울 사람. 대학과 첫 직장을 다닌 기간을 합해도 7년 남짓에 불과하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나는 내 뿌리에 대해 생각했다.


"불편한 편의점"은 서울 청파동에 있는 ALWAYS란 이름의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그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1편에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편의점 주인 염 여사와 연이 닿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된 ‘독고’라는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편에서는 ‘독고’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나리오의 독고 역을 맡은 황근배(별명 홍금보)란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2편에 거쳐 공무원 준비생, 쌍둥이 딸을 키우는 샐러리맨,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가장, 3년째 취업에 도전 중인 취준생, 잘난 형에게 치이는 고등학생 등이 등장한다.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사람들과 삶이다. 아니, 매 챕터 별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취업에 고생했던 나를, 내 동생을, 유독 특출난 형 혹은 언니를 둔 내 친구를, 사촌을, 오래도록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아는 오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우리 아빠 얼굴이 여러 번 떠올랐다.



그냥 떠나보내기엔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러 아쉬운 가을날. "불편한 편의점"의 배경 청파동에 갔다.


골목과 골목 사이 작은 삼거리의 편의점을 발견한 인경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트렁크를 끌고 그곳으로 골인했다. 편의점인데 편의를 좀 봐주지 않을까.
…(중략)…
“편의점요? 혹시 ALWAYS에 계세요?” 인경이 그렇다고 답하자 그녀는 바로 건너편 빌라 3층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경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밖을 살폈다. 곧 빌라 3층 창문이 열리더니, 희수 샘과 똑같은 미소를 띤 얼굴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불편한 편의점" 중에서



물론 청파동에 ALWAYS란 이름의 편의점은 없다. 하지만 “불편한 편의점" 중에서도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 인경(작가로 등장)의 에피소드에 기대 ‘청파동 골목길 작은 삼거리’에 있는 편의점을 하나 찾아갔다. 소설의 배경은 상품 품목도 빈약하고 아르바이트생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하는 ‘불편한 편의점’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 GS25다. 그래도 나는 GS25 앞에 펼쳐 있는 2개의 파라솔을 아래, 이곳 야외테이블에 앉아 참참참(참이슬 + 참치김밥 + 참깨라면의 조합)을 먹는 경만과 소맥을 마는 최 사장. 그리고 옥수수수염차와 함께 그들 곁을 지키는 독고와 홍금보를 그려 넣는다. 2편을 읽다 보면 ‘참치’ 조합이 무척 궁금해지는데,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는 소진이 즐겨먹는 ‘참’ 이슬과 자갈’치’ 조합이다. 둘 다 아는 맛이지만, 같이 먹어 본 적이 없어 그 마리아주가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갈치가 소진의 소울 푸드, 아니 소울 스낵 즉 영혼의 과자가 된 것은. 나중에야 소진은 자갈치가 생선을 본뜬 게 아니라 문어 모양이란 걸 깨닫게 되었으나 소울 스낵의 자리를 내어줄 만한 이유는 되지 않았다.
거기에 소주가 더해진 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였다.

- “불편한 편의점 2”중에서


소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 앞 대형 편의점에 자갈치가 놓여 있지 않아 조금 먼 ALWAYS 편의점을 애용하는데, 내가 방문한 GS25엔 자갈치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날름 집어 들었다. 사실 옥수수수염차도 함께 사려고 했지만 작은 사이즈를 팔고 있지 않아서 자갈치만 사서 나왔다. 그리곤 건너편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불편한 편의점 2”를 마저 읽으려 에코백을 뒤적거렸다. 이런… 책을 집에 두고 왔구나. 나의 정신머리를 탓하면서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체력과 당을 충전시킨다.


다시 본적 이야기로 넘어와서.

본적이 공덕동이란 의미는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공덕역, 남영역, 서울역… 이 일대에서 오랜 시간 살았음을 의미한다. (내가 대학 방송국 면접을 본 다음다음 해를 기점으로 호적법은 폐지되었고, 호적법상의 호적을 의미한 ‘본적’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사실 추상적 개념에 불가하게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면접을 떠올릴 때마다 억울하고 불편한 마음이 되곤 한다.) “불편한 편의점”에 등장하는 지명들 모두가 아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며 그중 공덕동, 효창동, 청파동 가운데에 ‘효창공원’이 있다. 소설 속 인물 여럿이 효창공원을 걷는데, ‘효창공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빠가 최소 백 번은 더 했을 추억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 형(= 나의 큰아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큰아빠는 사환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거의 따로 나가 생활했다고 한다)은 가끔 나타나서는 효창공원에 데려가서 나 보고 먼저 뛰라고 해. 자기는 조금 이따 출발한다고. ‘나보다 느려서 나한테 잡히면 넌 빠따로 두들겨 맞는 줄 알아라’ 다짜고짜 이러며 뛰란다니까.”

“이유가 뭔데요? 아빠가 공부를 안 했나 봐요? 형은 고생하는데”

“아냐. 그냥 화풀이지.”


... 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추억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말로만 듣던 ‘효창공원’을 "불편한 편의점" 덕분에 처음 가보게 되었고, 사실 너무 깜짝 놀랐다. 일요일 오후. 투명하고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다소 느슨한 듯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도 있구나…’ 내가 정말 잘 모르는구나.


일요일에도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지린내가 나는 굴다리를 지나 언덕지고 구불구불한 청파로를 걷다 보면 대학생들이 별 것 아닌 일에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주워 담다 보면 금방 도착하는 숙명여대 정문. 그리 크지 않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올라서면 효창공원이다. 효창공원은 청파동이 숨겨둔 보석과도 같았다. 보석이라고 해서 다이아몬드 같이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보석 말고 할머니가 끼고 있는 옥반지 같은 보석.


효창공원엔 아이와 배드민턴을 즐기는 아빠가 있었고, 조금도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외국인이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3인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기다리고 있는 가묘가 있었고, 백범 김구 기념관이 있었고, 효창 독립 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로 효창공원의 옛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이 담장에 붙어 있었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시대 땐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곳인데, 일제강점기땐 일본군의 숙영지이자 비밀작전지로도 쓰였고, 골프장의 모습을 한 적도 있었다. 옥반지를 낀 할머니의 손주름 마냥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안에 있었을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다가 다시 청파로로 나왔다.



언덕길을 올라올 때처럼 거리엔 ‘오늘 그 분식집 안 하면 어쩌지?’, ‘OO이가 노래는 못하는 데, 코드를 진짜 잘 짜’ 따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 사이를 지나치며 노천카페에 앉아 아마도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중년의 남녀 그룹(교수님들 같아 보였다)도 흘깃 쳐다보기도 하고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한 거리를 더 구경했다.


청파동을 걷고 나서야 사람 냄새로 꽉찬 “불편한 편의점”이란 소설이 왜 이곳에서 탄생해야 했는지 이해했다. 잠깐 걸은 반나절의 시간 동안에도 나는 많은 이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떠드는 이야기 조각조각을 들었고, 그 단편들에 상상의 살을 더해 그 삶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곤 다시 숙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소주도 한 병 사서 (자갈치는 이미 샀으니) 집으로 돌아가며 아빠에게 ‘드디어 효창공원에 가보았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 앞에 ‘일신 식당’이 20년 넘게 다닌 자신의 단골 맛집이며, 효창공원에 원효대사 동상을 세울 당시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아빠(당시 국민학생)도 함께 밧줄을 당겨 동상을 세우는데 일조했단 새로운 추억 이야기가 반찬처럼 곁들여진 답신이 왔다.


다음에 ‘일신 식당’에 같이 가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