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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Dec 19. 2016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못가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같은 시각 인천에서는.

오타루 결혼식장까지 오신 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식장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긴박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신랑의 선배가 자세히 글로 적어 보내주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결혼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어디서하든, 언제하든.

그런데..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어디서하든, 언제하든"이 항공편 결항된 눈보라 속에서 불과 6시간 후라면???



공항에는 일찌감치 도착했다. 전날 미리 짐을 싸고. 주말동안 집을 비우는게 미안했던 나는 아내를 처가에 데려다 주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4시에 일어났다. 맨날 아침에 일어나던 내가 이날은 눈을 번쩍 뜨고 아내를 태워다주는게 신기했는지 올림픽 대로를 달리는 중 아내는 내가 무척 독한 사람이란걸 깨달았단다. 5시에 송파의 처가에 도착한 뒤 아내를 내려다주고 곧바로 집으로 오자 6시. 일본이 가깝다지만 국가간 이동을 하면 오후까지 제대로된 식사를 못하리란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 짧게 아침식사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고서 집을 나선게 6시 40분. 겨울에 접어든 하늘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모두가 자고있을 토요일 새벽 골목은 고요해서 나의 캐리어 끄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퍼지는 듯 해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큰 길가로 나오자 공항 리무진이 운좋게도 마침 도착했다. 날씨도 추운데 타이밍이 맞자 기분이 좋았다. 모든게 순조로웠다. 


공항에 도착하자 8시가 되었다.  모두가 앞으로 써낼 미지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아침의 공항 탑승동은 항상 설렌다. 아내를 생각해 저녁 결혼식만 보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바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장과 구두를 넣은 작은 캐리어만 들고 왔다. 충분히 기내에 들고탈 수 있을 정도의 짐이었고, 티켓은 모바일로 체크인을 하였기에 별도의 수속을 밟지 않고 나는 곧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내 모바일 탑승권을 보여주니 그는 자기 부모님도 같은 편을 타고 온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우연에 반가워하였지만 그는 아들 친구 만나면 공연히 이것저것 챙겨주실 부모님 덕에 친구가 여행시간을 빼앗길까봐 그냥 모른척해달라고 하였다. 그래도 나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게이트로 조금 일찍 가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세점에서 별다르게 산 것도 없이 비행기 출발 50분 전에 게이트로 갔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라지만 한국인이 안보이고 일본인들이 다수인 듯 하였다. 늘 일본인이 한국인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지만 이날 내 눈에 보인 이들은 일본인에 대한 구별이 이렇게 잘 되는 나 지신이 신기할 정도로 일본인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별히 행색이 다르다기보다는 시야 안에 보이는 이들은 누구든지 간에 모두가 미묘하게 얼굴 골격이나 표정들이 한국인들과 달랐다. 


공항에 도착해서 만난 그의 아버지는 연신 초조한 표정이었다. "삿포로 행 비행기 어떻게 된 건가요?" 그러고 보니 게이트 위 화면에 삿포로가 사라지고 웬 모스크바와 오키나와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항공사 직원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강설로 일본 현지 공항이 폐쇄된 상태이고 몇시간 연착 수준이 아니라 내일이 되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니 오늘 저녁에 내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못가면 결혼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하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이 사실을 그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행기 연착 정도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이내 깨닫고 당황했다. 항공사 직원이 가족의 여권을 회수해 대책을 마련하려 하자 그제서야 나도 "앗, 저도 일행입니다. 저는 친구입니다."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러나 다급했던 아버지는 항공사 직원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이야기를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첫 인사지만 받는둥 마는둥하고 계속하여 항공사 직원에게 말머리를 향하셨다. 항공사 직원과의 대화는 내 생각보다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오늘 비행기가 뜰 수 없고,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줄 수 없으며, 우리는 탑승동으로 나가서 알아서 표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이 항공사의 일본 내 기상 상황이 좋은 다른 공항, 이를테면 도쿄나 센다이로 가서 신칸센을 타고라도 들어가는 방안을 이야기하였다. 


참으로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모든 논의가 탁상공론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결코 싸지 않을 신칸센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육상 교통의 한계상 7시간 반내에 식장까지 그렇게 해서 가는 것이 불가능하여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자연상황이 허락을 않는데 대통령을 동원해서 띄운다 한들 그건 명백한 안전불감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오늘 안에 아들의 결혼식장에 가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1,400km 떨어진 그곳까지 7시간 30분 내에 가야만 하였다. 그러나, 항공사 측에서는 다른 항공편으로 어떠한 옵션이 있는지, 나아가 현재 삿포로로 다른 어떤 항공사들이 있는지 등의 후속 대책을 위해 필요한 정보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은 그저 해당 삿포로행 티켓의 기상상황 악화로 인한 결항취소 및 100% 환불로 모든 조치를 마무리하려고 하였다. 겉보기에는 무리없는 마무리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런 지연 예고도 없이 출발 직전이 되어서야 일방적으로 결항을 선언하고 탑승동 밖으로  우리를 내보내 깔끔하게 손을 털려고만 하는 항공사 직원의 태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보내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게 따지기도 했으나, 항공사 직원의 외면하는 눈빛에 더이상 이 항공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나가서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는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이 항공사를 붙잡고 따지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를 짓고 나가야만 했다. 항공편을 취소할 뿐 아무런 후속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 항공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카트에 올라 탑승동을 나오기로 하였다. 나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한 카트에 태워져 나왔다. 카트가 걷는 것보다 편한 이동수단이기에 언뜻보면 편의를 받는 듯 보이지만 기실은 질질 끌려나오는 것이나 다를바 없어 이동하는 내내 모욕감을 느꼈다. 운전하는 항공사 직원의 어떻게든 빨리 골치아픈 고객을 처리해버리려는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기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구매한 티켓의 환불을 묻자 미리 말해주지도 않다가 내가 물어보니 그제야 한다는 말이 자동으로 환불이 되지 않고 ARS로 신청하라고 하자 어이가 없어졌다. 화가 무척 났지만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빨리 나가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두고보자 하고 가슴에만 품은채 갈 길을 서둘었다. 탑승동에 다시 나온 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7시간, 삿포로 공항에서부터 결혼식장까지 이동시간을 2시간 정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급히 알아보니 다른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인 Y의 12시 10분 출발 저가항공편은 아직 취소 등의 소식 없이 수속을 밟고 있다고 하였다. 이날 정말로 삿포로를 들어가야 했던 사람이 하필 이날 저녁 소중한 사람의 결혼이 있던 나와 그의 가족 외에 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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