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ee Dec 19. 2016

29년 만의 폭설, 65cm가 쌓였다

5편.



12월 10일. 

우리들의 결혼식날 기사다. 



대한항공은 치토세 공항 착륙이 위험할 것이라 판단. 

탑승을 20,30분 남기고 이륙을 다음날로 미뤄버렸다.


오늘이 결혼식인데 비행기가 내일 뜬다니... 당황한 신랑이 결혼식을 미룰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했다. 고토 씨에게 신랑의 가족들이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오늘 결혼식을 취소하고 내일이나 모레 가능한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대관 일정, 미용사, 사진사, 사회자 등 여러 명의 스케줄이 맞아야 했다. 일정을 확인해 본 고토 씨는 가장 빨라도 돌아오는 월요일 저녁에나 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계약서상 천재지변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신랑, 신부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식장에 오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식 취소는 불가하다"라고 했다. 매뉴얼대로 진행하는 그들에게 온정주의를 호소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히려 "오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식을 잘 진행해 봅시다"라며 우릴 진정시켰다. 



머릿속은 이미 선택할 수 없는 가정들로 가득했다. 


- '부모님은 무조건 전날 오시도록 했었어야 했는데...'

- '차라리 식을 일요일로 잡을걸...'



가족과 친구들에게 충분히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신랑의 가족들과 친구는 서둘러 게이트, 면세점을 빠져나와 12시 이륙으로 예정된 티웨이 항공권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분초를 다투며 넓은 인천공항을 빠져나와야 했으므로 짐이 타는 카트를 타시고... 나중에 어머님은 '아들 결혼식에 못 갈까 봐 부끄러움도 잊었다'라고 하셨다. 


반면 제주항공에 탄 여동생이 "잉? 언니 비행기 뜨는데?"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회항하게 될 수도 있지만 아예 다음날 비행기가 뜨는 것보단 낫다. 대한항공팀은 처음부터 티웨이를 끊은 신랑의 친구와 합류하여 다섯이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티웨이도 12시 이륙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교환학생으로 요코하마에 갔을 때 만난 십년지기 친구 마나미와는 매년 한 번 정도는 만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땐 같이 나고야를 여행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수원, 경주를 다녀왔다. 재작년엔 둘이 핀란드 여행도 했다. 여행할 때도 느꼈지만 늘 철저한 준비가 돋보이는 친구라, 이번 결혼식에도 완벽한 스케줄로 도착한 유일한 참석자였다. 도쿄에서 탄 새벽 비행기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여, 삿포로 미용실에 들러 머리까지 했다. 오타루에는 우리 촬영 일정 전에 도착하여 촬영을 돕기로 했다. 결혼식 다음 날엔 오타루 유리공방에서 개최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신청해두었다고 한다. 


결혼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신랑 신부 대신 마나미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내 핸드폰과 신랑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연락이 오면 가져다주고, 중간중간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기까지 했다. 일본어를 못 하시는 부모님의 손과 발이 되기도 했다. 헤어 메이크업을 예약하신 엄마는 식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화장을 계속 안 받고 계셨는데, 마나미가 중간에서 열 번이고 통역을 해드렸다고 한다. 드레스를 입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난 그런 상황인 줄도 모르고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동생의 연락이 들어왔다. 



언니...

우리 도쿄 나리타에 내려줬어...



오후 4시 15분. 

결혼식을 1시간 15분가량 남긴 시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