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ee Dec 17. 2016

피 떨어진다 피 떨어져

4편.




아침 일찍 진에어를 탄 친구들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착륙은 하였다. 뉴스를 틀어보니 대설경보 자막이 흐르고 있었고,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오는 JR 기차도 운행을 했다가 안 했다가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친구들 두 명은 렌터카를 예약해 둔 신랑의 친구들과 합류하여 한 차를 타고 식장으로 오기로 했다. 평소 도로 상황이었으면 1시간 30분 거리. 다섯 명이 탄 차는 시간당 30킬로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충 봐도 오후 5시 반 예식에 맞춰 도착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홋카이도에 있단 사실만으로 진에어팀의 걱정은 덜어두기로 했다. 신랑의 부모님이 타고 계신 대한항공팀, 나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탄 제주항공팀, 신랑의 친구가 탄 티웨이팀은 연락 두절


휴대폰을 놓을 수 없었지만 정해진 스케줄을 벗어날 수 없어 운하로 촬영을 나갔다.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고 웨딩슈즈는 미끄러웠다. 나가자마자 눈인 줄 알고 밟은 땅이 얼어 있어 웨딩드레스를 입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모두가 놀라 나를 진정시켰다. 심호흡을 하고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엄마가 뒤에서 목이 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엄마의 얼굴이 눈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 왜 그러세요?
- 너 피 난다 피 나
- 어디에서 피 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사색이 된 얼굴을 보고는 되레 겁이 났다. 

- 어디 다쳤는데 지금 추워서 정신없어 모르는 것 같아 피가 뚝뚝 떨어져 있어. 

'하혈인가?'
'발목이 까졌나?'


정신을 가다듬고 아픈 곳을 떠올리려 해도 아무 곳에서도 감각이 없다. 전신이 얼어 있었다. 


- 괜찮은 것 같은데요?


스태프들이 일단 천천히 걸어보자며 걷기 시작했고 몇 미터 되지 않는 첫 번째 촬영 장소에 겨우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신랑 신부를 마주치니 신나 했다. 배경을 찍다 말고 우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길을 걸어보니, 빨간 열매가 떨어져 터져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전 05화 내 결혼식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결혼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