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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May 21. 2017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숨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을

일본 가나자와



길었던 열흘간의 여행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가나자와 역에 내리니 아쉬움은 접어두어도 괜찮다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에서부터 출발한 우리는 어디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고마쓰 공항을 발견했다. 작은 공항이지만 매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마다 인천을 오가는 비행기 편이 있었다. 재작년부터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주요 배경인 가마쿠라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리고 나니 만화에 숨겨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도시를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그곳으로 향하는 일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엔 네 명의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 셋의 아버지는 어린 딸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스즈라는 딸을 낳는다. 스즈의 엄마는 몸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또다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가 죽었단 소식이 사치, 요시노, 치카에게 전해졌다. 셋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은 스즈를 만나게 된다. 사치의 제안으로 가마쿠라에 살게 된 스즈는 어느 날 본가와 연을 끊고 살던 친엄마의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유산 문제를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스즈의 외갓집이 있는 이시가키 현 가나자와 金沢 는 교토만큼이나 일본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다. 쌀이 맛있고, 가가 요리라 불리는 전통 요리가 발달되어 있으며, 금박공예, 염색 등 전통 공예도 유명하다. 언니들과 함께 가나자와 역에 내린 스즈는 역 앞에서 이모를 기다린다. 넷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뒤에 담긴 역 건물이 굉장히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가나자와 역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벌집을 닮은 커다란 돔으로 뒤덮여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우산은 필요 없었다. 이 거대한 돔은 비나 눈이 잦은 가나자와에서 우산을 슬며시 내어주는 가나자와 사람들의 정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해설을 읽고 나니 도시의 첫인상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


유산 문제인 만큼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나자와 시내 구경을 가게 된 스즈와 셋째 언니 치카. 스즈의 사촌오빠인 나오토가 동행한다. 나오토는 가나자와에서 가장 유명한 두 개 명소인 21세기 미술관, 겐로쿠엔(兼六園)을 제안한다. 그러나 털 낚싯바늘에 관심이 있는 치카의 취향대로, 셋은 낚싯바늘을 사러 간다. 가나자와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만든 털 낚싯바늘 공예도 발달해 있다고 한다. 만화에 그려진 낚싯바늘이 신기해서 실물이 궁금하긴 했지만 내 주변엔 치카처럼 낚싯바늘 선물에 기뻐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일본의 3대 정원이라고 하는 겐로쿠엔을 향해 걸었다.


"3대 정원이라는데?"
"다른 2개는 어딘데?"
"모르지. 흐흐."
"남의 정원인데 뭐. 내 정원이어야 좋지"


역시. 내 곁엔 마냥 신난 내가 날아가지 않도록 찬물을 적당히 끼얹어 중심을 잡게 하는 남편이 있었다.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분수도 있고, 석등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남편 말대로 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좋은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무들이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눈이 많이 내릴 때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장대를 세우고 밧줄을 내려 만든 원뿔 모양의 나무 보호대, 유키즈리 雪吊라는 것이었다. 




가나자와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바닷마을 다이어리 8편이 나왔단 소식을 알게 되었다. 번역을 기다리기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일본어판을 주문했다. 스즈가 언니들의 품을 떠나, 가마쿠라에 친구들을 두고, 시즈오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맏언니 사치와 함께 가본 학교 주변엔 녹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피어오를까. 나는 다시 시즈오카로의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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