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과 영국 바스 여행
일본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소논문을 쓰는 수업을 들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 준 작품이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몇 차례 접해서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겠단 생각에 수강신청을 했다. 소논문으로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인물 중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캐릭터, 오히려 미움을 받는 캐릭터인 미스터 콜린의 '중요한' 역할 6가지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영어고 일본어고 모두 실력이 부족하여 제출한 논문엔 빨간 펜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 있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소논문'으로 선정되었다. 여러모로 고단했던 교환학생 시절, 소소한 추억이 되었다.
영국 시골 한 구석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사회적, 역사적 시류와 무관하게 남성에 대한 환상, 연애감정 놀이에만 빠져 써내려 간 소설. 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사소한 사적 경험 덕분에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열성적인 팬도 많고, 셰익스피어 다음의 '최고의 문학가'라 손꼽는 사람도 있다.
1775년 목사의 딸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영국 남부 햄프셔에서 크고 자랐지만, 여동생 카산드라와 런던의 근교도시 바스를 자주 방문하였고, 1801년부터 1805년까지는 바스에 거주하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바스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노생거 사원(2007년 개봉)'에 바스가 담겨 있을까 해서 찾아 보았지만, 영화 속에는 바스의 풍경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똑같은 거리만 반복해서 나왔다.
'노생거 사원'은 17살의 주인공 캐서린이 부유한 이웃의 초대로 바스 여행을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캐서린은 바스의 화려한 사교계에 발을 들인다. 그곳에서 여러 인물들과 얽히게 되고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다.
통풍에 바스의 온천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앨런 씨 부인은 성격이 좋은 데다 몰런드 양을 좋아했다... 몰런드 양에게 그들과 함께 바스로 여행을 가자고 초대했다.
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
영화에서 바스를 만날 수 없어 실망을 하고, 제인 오스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 감정 묘사를 만나 보고자 책을 펼쳤다. 바스의 거리, 건물 등 장소적 배경이 세세하게 그려 있어 그곳을 거닐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오히려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영상미가 소설에서 흘렀다. (너무 영화의 부정적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노생거 사원은 아주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
바스는 런던 패딩턴에서 약 180km 정도 떨어진 도시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로마시대 유적으로 1987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로마인들이 만든 온천이 유명한데, 18세기에 온천의 효능이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랜 기간 휴양도시로 사랑받아 왔다. 하루면 충분히 바스 대부분의 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흔적을 따라 걷는 워킹 투어도 마련되어 있지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친구와 동행하였으므로 '제인 오스틴 센터' 정도만 나 혼자 다녀 오기로 했다. 자료관에서는 18세기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직원들은 제인 오스틴이 그린 '완벽한 남성과 여성'과 같이 말쑥한 얼굴을 하고 있고, 삽화에서 거둬들인 듯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본격적인 자료실 관람에 앞서 제인 오스틴의 삶과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 있다. 안내인의 말투도 18-19세기 느낌(? 실은 잘 못 알아 들어서... 나의 영어가 너무 시대가 앞서간 것으로 생각하기로.) 제인 오스틴이 바스에 머문 것은 불과 5년 남짓이지만 자료를 보고나면 도시 전반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다.
영화 '노생거 사원'에서 도시 바스를 회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은 영화 '설득'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역시 제인 오스틴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후반부에 여주인공 앤 엘리어트 (샐리 호킨스 分) 가 쉼 없이 뛰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스의 구석구석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일요일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한 주가 마감될 것이다. 클리프턴 계획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연기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크레슨트 거리를 걸을 때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
가장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로열 크레센트. 30채의 건물이 반원으로 늘어선 이 긴 건축물 앞 크레센트 거리를 샐리 호킨스가 열심히 달렸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중간까지도 가지 못하고 끝자락에서 셔터를 눌렀다.
다시 '노생거 사원'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스의 명소는 '광천수 홀'이다. 영어로 '펌프 룸 The Pump room '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광천수를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바스의 '만남의 광장'과 같은 곳이다.
광천수를 마신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였는데, 로만 바스 안에 온천수를 시음할 수 있는 장소가 있던 것이 기억났다. 시음한 온천수는 미지근하고 조금 비릿했지만,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신 광천수도 이 맛과 비슷했을까?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광천수 홀의 뜰을 지나 유니언 거리 맞은 편의 아치 길에 이르렀지만 그곳에서 멈춰야만 했다. 바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칩 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 것이다.
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
이 장면은 '노생거 사원'의 주요 인물 몇 명의 첫 만남 장소로, 영화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캐서린의 친구로 나오는 이자벨라가 길을 건너기 난감하여 굉장히 짜증을 내는데, 마침 정확히 이 장소를 카메라에 담았었다. 현재의 이 거리는 다른 의미로 길 건너기가 번거롭다.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인파를 헤치고 유니언 스트리트를 지나 올라가다 보면, 밀 섬 스트리트가 나온다. 이 곳 역시 소설 속에 담겨 있는데, 난 이 거리에서 '워터스톤즈 Waterstones'라는 책방에 들어갔다.
책방에는 왠지 바스에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제인 오스틴 특별 에디션과 바스의 풍경이 담긴 학용품들이 잔뜩 있었다. 이것들은 나를 계속해서 유혹했다. 여기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바스 기념품은 사가야 하지 않겠냐고. 평소 같았으면 주렁주렁 사서 나왔을 나. 그러나 나는 영화 '설득'의 주인공 앤처럼 말해야 했다.
"이젠 설득되지 않아요."
파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