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일기_도시락
2년 남짓 도시락을 쌌다.
추억의 도시락에는 멸치볶음, 분홍 소시지, 김치볶음, 계란프라이를 흰쌀밥과 함께 담는다.
동화는 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피아노만 치더니 결국 음대에 진학했고 휴학 후 육군으로 입대했다.
다른 건 몰라도 어미의 직감으로 알았다. 성대 하나는 쓸만하겠구나.
성악과 판소리를 고민하며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두고 국악을 택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다가 대회에도 나가며 어느 정도 기량을 발휘하나 싶더니 결국... 울어버린다. 너무 하기 싫다고.
음악 이론을 배우는 과정에서 피아노를 처음 접해 본 동화는 곧바로 빠졌다. 그리고 진로를 바꿨다.
조금만 갈고닦으면 지금의 대학보다는 상위 대학을 진학 할 수 있고 희소성 때문에 가치도 있어 보이는데 동화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가 고1 여름. 누구나가 늦었다고 충고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레슨비를 지원하고 도시락을 안겨주며 왕복 20km의 거리를 매일 픽업했다.
시간당 꺾이는 레슨비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고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도시락을 택했다.
그렇게 갑자기 도시락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꽉 막힌 연습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피아노만 쳐도 시간이 부족했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우는 시간도 아까워서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보온 도시락에 담아 보냈다.
식사 후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 피아노만 쳐야 하는 상황 때문에 고3 막바지에 동화는 100kg을 넘겼다.
좋아하는 반찬들은 육류와 튀김이고 엄마 입장에서는 무척 고민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을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냐는 원망.
치료를 받아도 허리가 말을 듣지 않던 순간.
갑자기 입시곡을 바꾸겠다고 억지를 부렸던 사건.
콩쿠르만 나가면 울상이 되었던 모습.
함께 연습하는 후배와 신경전을 벌인 일들.
입시를 코 앞에 두고는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일.
추운 겨울에도 면티셔츠를 3~4번씩 갈아입을 정도로 흘린 땀들.
역시나 첫 아이의 입시는 모든 게 낯설고 고통스러웠다.
동화가 힘든 만큼 가족도 아팠다.
한 여름 모처럼 동화가 좋아하는 흰밥이다.
부산 어묵도 들기름 살짝 둘러 간장과 설탕에 볶고 메추리알과 방울토마토도 끼워 넣었다.
이 날은 아마도 휴일 오전으로 직접 가져다준 기억이 있다. 이때만 해도 밥 욕심이 어찌나 많던지 반찬과 밥의 양이 거의 비슷했고 심지어 컵라면도 후식일 때가 있었다. 어쨌든 밥이라도 따뜻할 때 바로 먹이고 싶은 어미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대에 피아노가 들어왔어요."
희소식이었다. 나름 피아노의 품격을 매우 따지는 동화는 그 또한 만족스러웠던지 더없이 기뻐했다.
근무 후 코노와 헬스장에 가던 동화는 이제 피아노를 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오던 전화가 일주일에 한 번도 내가 먼저 하게 된 건 부대에 피아노가 들어오고 난 이후 같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바퀴를 보며 이름을 맞추던 아이. 마트에서는 선풍기 코너에만 있던 아이. 고깃집에 가면 환풍기만 뚫어지게 봐야 했던 아이.
어느새 상병이 되었다.
집 밥을 도시락 용기에 담아 아들이 따로 먹을 수 있도록 했던 나의 노력은 아이를 양육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었고 기꺼이 기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가끔씩 먹는 모습에서나 매일 설거지 해야 하는 빈 통을 열어 보는 순간에는 당시 하루하루 동화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동화도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열 때마다 편의점 도시락과는 다르다. 정도는 느꼈을까. 단 한 번도 도시락이 싫다고 말 한적 없고 묵묵하게 가져갔다. 비록 시온성에서 짬뽕 곱빼기를 먹고 가더라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어려운 시절을 우리는 서로 말없이 그렇게 흘려보냈다.
직장일을 하는 내가 매 순간 같이 움직이며 뒷바라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나마 도시락으로 너의 입시에 동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 같다. 용돈이나 챙겨주며 바깥음식만 먹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아이가 어리고 자아가 성립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관심이 사랑으로 반영되는 시기라고 규정화되어 있지만 형태는 여러 가지 일 듯하다. 기간도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것이고.
지금도 녀석은 말한다.
"그때 엄마 아빠 고생하셨던 일은 제가 평생 잊지 못해요."
고맙다. 내 아들 동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