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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Aug 26. 2023

김치 앞에서

집밥 일기

맛김치.

섞박지라고도 불리는데 무와 배추를 섞어 만든 김치라는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그때그때 담가먹는 김치를 말한다.

겉절이는 절임 시간을 더 짧게 하여 채소 표면에만 간이 배도록 하는 차이가 있다.





퇴근길, 배추 한 포기를 샀다.

도마에 싹둑싹둑 썰고 3~4번 깨끗하게 씻어 소금물에 절인다.

절여진 채수에 홍고추와 홍시를 섞어 갈아 넣을 계산으로 미리 여러 번 헹구고 절이는 소금도 꽃소금을 쓴다.




전라북도 익산의 최여사님 김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어머님 손맛도 이제는 변하고 내 입맛도 결혼 전의 우리 집 맛을 기억해 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야장천 때면 때마다 택배나 인편으로 당신의 김치를 보내시는 어머님은 너무 이기적이다.

뚜껑을 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며 제발 그만 보내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듣지 않으신다.

고문인지 전쟁인지 평온한 집안에 어머님의 배추김치가 도착하는 날은 여지없이 부부가 불편해진다.






제법 절여진 배추는 새우젓까지 함께 갈아 넣은 양념에 버무리며 썰어놓은 쪽파와 부추를 섞어가며 소금과 설탕을 추가해서 간을 맞춘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도 아니면서 왜 굳이 김치를 직접 담가먹느냐며 고생을 사서 한다는 시선을 보낸다.

왜일까...

그냥 내가 만든 내 김치가 맛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김치 장인의 김치라도 내입에 맛있어야 맛있는 김치 아니겠는가.


특별한 맛은 없다. 잡향이 배어있는 배추 본연의 맛이 드러나는 그런 심심한 김치다.

김치가 다 만들어지자 공기에 따뜻한 밥을 담아 그 자리에서 한 그릇을 싹 비운다.

'살겠다'가 그냥 나오는 찰나다.



다음날 아침은 마침 토요일이다.

고맙게도 모두 나가 준 식구들 덕분에 오롯이 나만 있다.

멸치 육수를 내고 칼국수를 팔팔 끓여 계란도 넋넋하게 푼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이 밥상에서 어제는 머슴처럼 오늘은 못생긴 아줌마처럼 국수를 들이켠다.




오~ 나의 김치님이여!

오~ 나의 칼국수시여!


작년 가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던 날 아침 군에 있는 아들의 생일날이기도 한 그날.

부부는 교동도에 있었다.

난생처음 가보는 곳에서 재래시장을 찾았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질 좋은 햇 새우젓을 발견했다.

그때의 새우젓 한 통이 내가 담그는 김치를 환상의 맛으로 인도하고 돼지고기 수육을 먹을 때도 맛을 보탠다.


비타민 몇 알을 털어 넣고 피곤함을 외면해 버리는 자세로 내가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일.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왜 김치는 맛있고 난리.

왜 나는 김치도 잘하고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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