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변이 있나!
어린 시절 학교에서 똥 싼 날의 의미
똥을 쌌다. 수업 시간에 똥을 쌌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똥을 쌌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뇌병변 장애인인 나는 만성 변비가 있다. 아무래도 걷지 않고 앉아만 있고 움직임이 많지 않다 보니 변비를 달고 산다. 변비의 기초 해결법인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는다. 타인에게 물을 가져다줄 것을 부탁해야 하고 그 결과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니까 번거롭다.
평소 변비 예방을 했어야 한다. 아니, 모든 일은 준비하고 예방하고 연습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을 안 하면 모른다. 알 수 없다. 서로가 편하려면 상황에 맞게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아~~ 이거 무슨 냄새야? 방귀 냄새 나!”
내 뒷자리에 앉은 아이의 혼잣말이 들렸다. 나는 점심시간 직전인 4교시에 의자에 앉은 채로 변을 봤다. 하필 내 자리는 정중앙에 있는 교탁 바로 앞자리였다. 차라리 가장자리. 창문 옆자리나 교실 문 옆자리였으면 조금이나마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앞에는 선생님, 좌우, 뒤는 아이들로 포위된 모양새였다. 뒷자리 아이의 말은 전염력이 강했다. 폴폴 풍겨 퍼지는 내 대변 냄새와 맞먹었다. 곧이어 너 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했다.
“와 대박! 방귀 냄새 대박!”
“누구냐? 어우, 또 뀌었나 봐. 우웩!”
“속이 엄청 안 좋은가 봐~ 이 정도면 병원 가야 할 듯.”
반 아이들의 반응에 나는 일을 치르기 직전보다 더 식은땀이 났다. 뉴스 속 강력 범죄자들처럼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속죄라도 하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곧 아이들에 대한 내 미안함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냄새와 함께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고 싶어요.”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해 벌어진 참사다. 그날은 점심만 먹고 하교하는 날이었다. 점심만 안 먹고 조금만 버티면 집에서 아니, 엄마가 오면 학교 화장실이라도 빨리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수업 시간에 옆자리 친구에게, 친구들 앞에서 화장실 좀 가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손을 들어 선생님에게 의사 표현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난 주목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거나 모둠별로 돌아가며 국어 교과서를 읽는 것도 더듬더듬 벌벌 떨었다. 그런 내성적인 아이였다.
선생님은 쿰쿰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창문을 모두 열었다. 그 상황에서 교실에 있던 사람들은 식사를 해냈다. 누가 대변을 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눈치였다. 저학년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지독한 방귀 냄새로만 치부했다. 그 시기 장염이 유행이었던 탓에 속이 안 좋았던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게 나에겐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종례까지 버티고 그대로 집에 돌아와 샤워하며 펑펑 울었다. 하의 속옷에 뭉개진 변을 보며 내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날 욕실 바닥 타일을 적시는 물이 수돗물인지 내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린 과거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말로 당당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난감한 상황을 떠올리고 상황에 맞는 혼잣말을 수도 없이 했다. 아주 잠깐의 부끄러움으로 더 큰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니, 생리현상 자체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감한 상황에서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다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수많은 연습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말하려면 아직도 떤다. 예상치 못한 어떤 상황이 닥치면 여전히 가슴은 요동친다. 하지만 표현한다. 말이 힘들면 글로 쓴다. 소심했던 어린 나는 말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글도 꾸준히 쓴다. 스스로 괜찮은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연습한다.
삶은 연습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를 좀 더 성장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게 무엇이든 조금씩 꾸준히 연습해보는 건 어떨까?
대변을 참는 연습 같은 건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