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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Oct 06. 2024

[단편소설] 시체가 나타났다 2

점점 미쳐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 시체가 나타났다 1로부터 이어짐-


다리 아래에 텐트가 쳐진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처음과 달리 낡아 빠진 텐트는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푹푹 찌던 8월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이 왔다. 정말 저안에 시체가 들어있었다면 삼복더위에 상당히 부패했을 것이다. 시체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가 떠올랐다. 이제 도저히 그 안을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왠지 정말 저 안에 시체가 있을 것만 같다. 구청에 철거해달라고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119에 신고해야 하나? 정말로 시체가 있으면 신고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조사 받아야 하나? 감사부 말고 또 조사를 받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한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감사부에서 거래처의 마진율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누가 얼마나 돈을 요구했는지 묻는 게 아니었다. 우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비싸게 납품한 것을 구매부에서 눈감아줬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자다가 일어나 물을 들이키기 일쑤였다.


창밖으로 들리는 거센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어두컴컴한 하늘 때문에 새벽인가 했지만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 안 거울을 보니 눈알이 빨갛다.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다리 아래를 보니 누런 강물이 넘쳐서 강변의 나무들까지 잠겨버렸다. 다리가 무사한 게 다행일 정도로 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제 텐트는 저 흙탕물 속에 휩쓸려가 버렸을 것이다.


그날 김과장은 휴가를 냈다. 사무실 안에서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창밖을 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었다. 감사부에서는 뭔가를 알아냈는지 못 알아냈는지 거래처 조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때 부장님이 나를 불렀다.


감사부에서 이대리가 돈 받은 거에 대한 거래처 진술 확보했다고 들었습니다.

김과장님은요?

거래처 쪽에서 이대리 얘기만 나왔다고 들었는데... 김과장도 받았나요?

다 김과장님이 시킨 거라고요.

그건 감사부에서 더 조사하면 밝혀질 테고, 솔직히 이대리한테 실망했어요. 가봐요.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부장님 방을 나와서 곧장 김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이 개새끼가 대체 어떤 수작을 부린 거야.


다시 감사부에 불려갔다. 감사부장은 돈을 받은 적 있는지 추궁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펜과 종이를 주면서 어느 회사로부터 얼마나 받았는지 적어서 내라고 했다. 정확한 액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기억나는 대로 적으라고 했다. 나는 접대 받은 술자리를 떠올려가며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거래처에서 뇌물 먹고 원래 가격 보다 비싸게 사준 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만약에 조사해서 밝혀지면 이대리 잘리는 게 문제가 아냐. 이건 형사 고소감이야.


나는 사내 공지를 통해 징계가 정해질 때까지 무기한 자택 대기 발령을 받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려서 우산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잦아든 빗방울을 맞으며 터벅터벅 걸어서 회사 밖으로 나왔다. 문득 정문 초소 안에 경비아저씨가 없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인사 한다면 맞인사를 할 면목이 없었다. 다리 아래엔 불어난 흙탕물이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지류가 흘러드는 곳에는 제법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다리위에서 멍하니 한참 동안 소용돌이를 바라봤다. 집에서 다시 김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집 안에 쳐 박혀서 티비만 봤다. 라면을 끓여먹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먹고, 과자를 먹는 동안 두 눈은 티비에 가 있었다. 때때로 김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사무실로도 걸어봤지만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래처를 만나서 선수 친 게 분명하다.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덤터기 씌우고 자기는 쏙 빠져나가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다.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때 티비의 큼지막한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폭우 뒤 A시 OO천 변에서 시체 발견.


이럴 수가.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얼른 주워서 관련된 뉴스를 보도하는 채널이 있는지 찾았다. 마침 한 뉴스 채널에서 보도하고 있었다.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조사하고 있으며,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한다. 왜 하필 강변에서 부패한 시신이 발견된단 말인가. 산책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정말로 그 텐트 안에 시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찌감치 걸어서 회사로 향했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흙탕물은 많이 줄어 강변 아래로 수위가 내려갔다. 노란 텐트는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쓸려 내려온 나뭇가지와 쓰레기들만 가득했다. 다리 끝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접근 금지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나는 회사 정문이 보이는 곳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김과장의 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김과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강변에서 발견된 시신에 관한 새로운 뉴스가 나왔다. 시신에 머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취재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하긴 해도 백골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두개골만 빠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팔과 다리는 모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사체 훼손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폭우 뒤 거센 강물 속에서 뭔가에 부딪혀서 훼손 됐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강의 상류부터 대대적인 수색을 시작할거라고 밝혔다.


병신들, 상류엔 뒤져봤자 아무것도 없어. 텐트 이후의 하류를 뒤져야지.


다음날 아침에도 회사 앞에서 출근하는 김과장을 기다렸으나 허탕만 쳤다. 집으로 돌아가려다 다리 앞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접근 금지 테이프가 너덜너덜 붙여 있었다. 테이프를 잡아 가랑이 아래로 내려 넘은 뒤 계단으로 내려갔다. 노란 텐트가 있던 자리에 섰다. 쓰레기와 나뭇가지만 널려있었다. 악취가 진동해서 숨을 멈추고 얼른 자리를 떴다. 강가로 가서 주변을 살펴봤다. 흙탕물이 옅어지고 본래의 강물 색을 점차 되찾아가고 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시신의 목이 있다. 강가에 난 수풀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류를 따라 걷다가 수풀이 나올 때마다 그 주변을 살펴봤다. 쓰레기만 걸려 있을 뿐 머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가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갔다.


그날 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김과장이 부린 수작에 대해 들었다. 나한테만 돈을 줬다고 말하면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단다. 우리 회사와의 거래가 중단될 처지에 놓인 업체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과장의 말에 따랐다고 한다. 침대에 누우니 천장에 노란 텐트가 그려졌다. 마치 그 안에 누워 있는 시체가 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피곤해서 잠이 쏟아지면서도 화가 나서 잠이 달아나는 이상한 현상에 시달렸다.


그 후 며칠 동안 아침에는 회사 정문 근처에서 김과장을 기다렸고, 낮에는 강가에 머리를 찾으러 다녔다. 기다리던 김과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머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는 김과장의 차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그 앞을 막아섰다. 나는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더니 이내 차를 천천히 전진시키며 나를 밀쳐내려 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문 초소 안에 있던 경비 아저씨가 나와서 나를 제지했다. 그 사이에 김과장의 차가 정문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죽여 버릴 거야.


집으로 돌아와서 가득 차있는 우편물 함에서 회사에서 온 편지를 발견했다. 긴장하며 천천히 열어보니 해고 통지서였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찢어 버렸다. 곧장 집밖으로 나가서 강변을 미친 듯이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고 돌아다니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을 알았다. 강을 따라 다리를 두 개나 넘어온 것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기 위해 가까운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 얕은 강물에서 물고기 떼가 한곳에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변에서 돌멩이를 던져서 물고기를 쫒아내니, 어슴푸레 사람 얼굴 형상이 보였다.


찾았다. 이 새끼.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야비하게 생긴 얼굴이 꼭 김과장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인터넷으로 노란 텐트를 주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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