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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Oct 09. 2024

공학개론

짧은 소설

화정이가 훗날에라도 학교를 졸업했는지 알지 못한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녀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녀는 행복하고 싶다고 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제과점을 하는 엄마랑 같이 빵을 구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걸걸한 여장부 스타일의 그녀가 하는 말에 친구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럼 서울대 공대에 왜 온 거야? 대체 공부는 왜 열심히 거야?

친구들 중 누군가 물었다.

-왜? 빵 굽는 사람은 공부 잘하면 안 돼?

화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녀는 같은 표정으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질문을 하곤 했다.

1학년 때 공학 개론 시간이 생각난다.

-다들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원리가 뭔지 알죠? E = mc2 죠. 에너지(E)는 질량(m) 곱하기 빛의 속도(c)의 제곱. 그런데 이게 우리 공대에서는 달라진다 이 말이야.

Engineering = money × cost2.

공학은 돈 곱하기 비용의 제곱. 공학은 곧 돈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자연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면 되지만...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이 맨 앞자리에 앉은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가요? 공학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아닌가요?

200 명이 넘는 학생이 있는 대형 강의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때 교수님이 화정이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수님의 답변에 강의실에 큰 웃음이 터졌고, 일순간 빨갛게 달아오른 화정이의 얼굴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해가 바뀌며 친구들은 각자 제 갈 길을 모색했다.

일부는 현역으로 군대에 갔고, 나머지는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다.

나는 관심 있는 실험실을 방문하며 분위기를 탐색하다 한 연구실에 정착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진학했고, 점차 그녀는 뇌리에서 잊혀졌다.

대학원생이 되어 지도교수님 수업의 조교를 맡다보니, 하나둘씩 제대하고 복학한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군대에 다녀온 친구들은 같은 수업을 듣는 후배들보다 성실했다.

나는 친구들의 기말 답안지를 채점하며 점수를 잘 주려고 노력했다.

학기가 끝나고 조교자격으로 종강파티에 참석했다.

어쩌다 화정이 얘기가 나왔지만 아무도 그녀의 근황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어느 지방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친구들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구들은 나처럼 학교에 있는 몇 명뿐이다.

어쩌다 학회에서 옛 친구들과 만나면 교육부 욕이나 하고 교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교육자이자 연구자인데, 교육과 연구 얘기는 늘 뒷전이 된다.

가끔 술이 들어가면 옛날 얘기가 나오곤 한다.

나는 취하면 조교시절에 너희들 학점 잘 주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아냐고, 우쭐대곤 한다.

그러다 누가 화정이 얘기를 꺼냈다.

-너 화정이 티비 나온 거 봤어?

-어. 나도 봤어. 걔 성공했던데?

나는 머릿속에 한 얼굴이 떠오르며 술이 확 깼다.

-화정이가 어떻게 됐는데?

나는 몹시 궁금했다.

-너 못 봤어? 지난주에 화정이가 서민부자에 나왔잖아. 무슨 빵 굽는 효모를 특허내가지고 대박이 났더라고. 걔네 동네 숲속에만 있는 효모를 채취 해다가 빵을 구웠더니 맛이 그렇게 좋더란다. 난 빵 효모는 다 똑같은 줄 알았지, 자연에 효모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어.

-그래, 진짜인지 모르겠는데 애들 아토피에 좋다는 소문이 나가지고 난리도 아니란다. 나도 맛 좀 보려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까 맨날 재료 소진되어서 안 된다고만 떠.

-그래? 빵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런데 화정이 학교는 졸업했나? 2학년까지만 다녔잖아.

-야, 돈을 쓸어 담고 있는데 졸업이 무슨 상관이야. 요즘 서울대 졸업장이 밥 먹여 주냐? 받아만 준다면 교수 그만두고 화정이 밑에서 빵 굽는 거 몇 년 만 배웠으면 좋겠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방송을 봤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이 들긴 했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두 눈.

화정이 하면 늘 대학교 1학년 공학 개론 시간이 떠오른다.

Engineering = money × cost2.

우리들 중에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화정이 뿐이었다.

마시던 캔 맥주를 입에 털어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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