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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Oct 18. 2024

[단편소설] 나무 2

밭에 나무를 심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

그 후로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35년 공무원직에서 은퇴했고, 나는 아버지 은퇴 직전에 가까스로 결혼했다.

그 사이 밭에 있는 해송은 너무 커버려서 저걸 뽑아서 옮겨 심을 수 있나 걱정이 들 정도였다.

형은 여전히 지방 광역시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재혼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주변에 중매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형이 거절하는 모양새다. 형은 스스로 집안 어른들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 한동안 명절 때에도 일을 핑계로 집에 오지 않았다.

나의 첫 아이 돌잔치에도 형은 식사만 하고 바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첫 손주를 보며 방긋 웃다가 돌아간다는 형의 말을 듣고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떠나려는 형을 붙잡아 놓고는 바리바리 음식들을 쌌다. 싫다는 형의 손에 보자기로 싼 음식꾸러미를 기어이 쥐어 보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밭에 있는 나무를 팔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아버지께 축하한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나무 판 돈을 결혼자금으로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당시에도, 지금도, 그깟 나무 팔아봤자 얼마나 받겠어, 라고 생각했다. 내심 그 돈으로 부모님께서 해외여행이나 했으면 바랐다.

“어떻게 된 거에요?”

“며칠 전에 네 형이 아는 사람 통해 팔 수 있다고 연락 왔어. 나무 사진 여러 장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지. 그랬더니, 나무가 좋다고 그쪽에서 사겠대.”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형이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하지 않고 외톨이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했다. 그러나 형이 조경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내심 찜찜했다.


밭에 있던 해송들이 옮겨지자, 마침내 아버지 카톡 프로필에서 해송 사진이 사라졌다. 나는 그루 당 얼마나 받았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쁨 섞인 목소리에서 나무 값을 제법 두둑이 받았다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 돈으로 어머니랑 놀러 다닐 거라는 말이 반갑게 들렸다.


얼마 후, 형은 변호사 개업을 한다며 판사를 그만 두었다. 공무원으로 은퇴한 아버지는 내심 서운해 했으나 고향 근처의 광역시로 온다는 말에 반색했다. 형은 학교 친구랑 동업하기로 했다. 그 곳에 작은 아파트를 구하고, 며칠 뒤 이삿짐을 보냈다. 그리고 혼자 운전해서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형의 유해는 밭에 남아 있던 두 그루의 해송 밑에 뿌려졌다.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이 두 그루는 팔고 싶지 않아 남겨 두었다고 했다.

나중에 형이랑 나에게 한 그루씩 줄려고 했단다.

모두 아파트에 사는데 대체 어디에 심는다고.

형과 나는 같이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훨씬 길어서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어느새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아버지는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이제 그만 울라며 아버지를 다그쳤다.


형이 떠나고 몇 년간 아버지는 밭에 농사를 지었다. 감자며, 고구마, 옥수수 등, 심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심었다. 수확할 때가 되면, 아버지는 농사지은 것을 가져다 먹으라고 나를 불렀다. 나는 주말이 되면 아내, 아이와 함께 고향에 가서 같이 농작물을 땄다. 그러다 힘이 들면 형이 잠들어 있는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가끔 형 생각이 나곤 했다. 제 돌 잔치에 한 번 본 큰 아빠를 기억할리 만무하지만, 아이에게는 나무 밑에 큰 아빠가 묻혀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큰 아빠가 뭐냐고 되물었다. 나는 아빠의 형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아이는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를 따라나섰다.


얼마 전, 아버지가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다. 형이 근무하던 지역 건설업자가 뇌물 혐의로 조사를 받던 와중 그의 수첩에서 형의 이름이 나왔단다. 형의 이름 옆에 ‘나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모르는 일이고, 아들도 이미 죽었으니 그런 일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경찰은 혹시 뭐 아는 게 있는 지 묻는 거였다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단다.


며칠 뒤, 아버지는 밭에 남아 있던 해송 두 그루를 베어버렸다.

아이가 여기 있던 나무 어디 갔냐고 내게 묻는다.

그루터기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답하지 못했다.

아이가 그럼 여기 있던 큰 아빠도 같이 간 거냐고 다시 묻는다.

나는 끝내 할 말이 없었다.


형이 밭에 와서 처음 나무들을 봤을 때, 독수리 같다던 그 나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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