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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Jun 01. 2023

이렇게까지... 살았구나!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을 읽고


박물관에서는 올해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진행한다.

박물관에 있는 세 개의 인형, 유럽 굴뚝청소부와 호주 스웨그맨, 스리랑카 찻잎 따는 노동자를 통해 우리가 잘 모르는 직업의 세계와 그 직업이 필요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하는 내용이다.

인형이 인류의 많은 시간과 공간들을 대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일'이라는 부분을 들춰보고자 한 것이다.

관심을 갖다 보니 인류의 직업이 더 궁금해져서 선택한 책이다.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이라고 하면 짚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웬걸 내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처음에 소개되는 이동변소꾼부터 놀랍다. '유럽이 이 정도였어?' 싶다. 화장실이 귀했던 사회, 사람들이 어떻게 중요한 생리현상을 처리했는지 알려주는데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새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 활약했던 개미번데기수집상도 재밌다. 18세기만 해도 새를 위해 먹이를 찾았기 때문에 개미번데기 수집상이 있었던 것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새를 귀하게 키웠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모가 유럽에서 광범위한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1780년 파리에서 출생한 2만 1천여 명의 신생아중 1만 7천 명이 시골에 사는 유모에게 보내지고 700명은 유모가 집으로 왔으며 다른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딸을 유모로 만들어 돈을 번 부모들도 있었고 신체적 조건이나 신분을 두고 유모를 차별한 사례들도 있었다.


코르셋의 유행으로 수요가 많았던 고래수염처리공. 오스트리아에서 커피의 유통을 줄이기 위해 고용했던 커피냄새탐지원, 무대의 촛불을 관리해야 했던 촛불관리인 등은 한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한 궁정흑인에 관한 이야기다.

'앙겔로 졸리만(1721~1796)은 아마도 빈에서 가장 유명한 궁정흑인이었다. 처음에 그의 운명은 독특한 외모에 대한 사회의 엄청난 관용을 증명하는 것이었지만 운명의 마지막은 전혀 딴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졸리만은 리히텐슈타인 영주의 "친애하는 흑인"이자 "시종"으로서 영주의 접견이나 출전에 동행했다. 그는 심지어 "영주 아들의 교육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기도 했으며 이러한 모든 업무에 상응하는 급료를 받았다. 그 돈은 백작 서기장의 미망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충분했다. 그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외에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체코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황제 요제프 2세의 아들이 그와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할 정도로 호감을 주는 성격이었다. 졸리만은 1781년 심지어 엘리트만이 참여하는 프리메이슨 지부에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단원 중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도 있었다. 2년 뒤 그는 이 지부에서 의식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었으며 더 이상 심부름을 하는 형제가 아니라 기사의 형제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은 뒤 황제의 소망에 따라 박제로 만들어져 박물 표본실로 보내졌다.... 3년 뒤에는 그의 옆에 박제된 작은 소녀를 갖다 놓았다. 나중에는 검은 피부의 동물관리인과 또 다른 아프리카인이 전시되었다.'


같이 살지만 너희는 달라... 인가. '문명'을 내세우는 '야만'의 끝은 어디인가 싶다. 사람 박제, 전시 참 많이 했던 유럽인들.

숯쟁이, 지하관우편 배달부, 무면허의사, 말장수, 가마꾼, 모래장수가 보여주는 시대는 흥미롭다.

산에 은둔해 숯을 만들어내던 숯쟁이들은 왕이 왔을 때 얼굴을 씻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직업인이었다. 숯이 그만큼 중요했으니.

1984년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는 유럽 대도시의 우체국마다 지하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간단한 우편은 이 관을 통해 배달되었다고 한다.

이 우편배달은 시간도 빨라서 3킬로미터 정도의 우체국과 우체국에 전달되는 데는 4분 19초 정도면 되었다.

무면허의사는 의료기술과 시설이 발전하지 못한 시절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수술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무면허의사에게라도 기대야 하지 않았을까.

말장수는 '말을 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상술의 대명사였단다. 말을 생기 있게 보이도록 속이는 데는 후추가 최고였다고!

가마꾼 대목을 읽으면서 새삼 참 힘든 일이었겠다 싶었다. 사람이 사람을 들어 옮겼으니 말이다.

그런 가마꾼들에게 비밀엄수 의무가 있어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물론이고 누구를 어디로 태웠는지도 발설하면 안 되었다.

모래장수는 고된 직업의 대명사였다. 100년 전만 해도 유럽은 집 바닥을 모래로 청소했는데 그러기에 모래장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래장수의 일은 모래 암석을 채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모래 암석을 부수거나 갈아 실내용 모래로 만들어 파는 것까지였다. 고되고 험한 이 일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일이었고 일하는 과정에서 모래가 눈에 들어가 염증을 유발했고 폐에도 쌓여 건강을 해쳤다.

'직업은 당대 인간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이다'로 시작하는 머리말부터 흥미를 자아내고 저자 미하엘라 비저가 들려주는 다양한 직업의 세계는 흥미롭다. 성글게 알고 있던 인류의 삶과 역사, 그 사이사이 일부의 세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보게 해 준다. 글로만 읽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장면들을 꼼꼼한 고증을 바탕으로 감각적으로 보여준 이르멜라 샤우츠의 그림이 곁들여져 보는 맛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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