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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Jan 08. 2023

모두가 행복하다는데 기이한...

SF소설의 고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지지난해부터 우연히 SF영화와 소설을 좀 보게 됐다. 시작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였던가. 우주인과 지구인의 만남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주인에 대한 묘사가 상상도 못 한 방식이었고 SF영화지만 감성적이고 조금은 몽환적이며 분위기가 있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라면 <그을린 사랑>을 봤었더랬는데 아주 다른 장르지만 또 다른 감동이었다. (아무래도 드니 뵐뇌브 감독의 영화는 내 취향이다.)


그러다가 <컨택트> 영화의 원작이 궁금해져서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창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더불어 <바빌론의 탑>도 읽었는데 테드창의 과학소설들은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원작도 훌륭했지만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200%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두 편의 영화로 내게 신뢰를 준 드니 빌뇌브 감독이 2021년 만든 <듄>은, 주연 티모시 살라메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했지만 영화의 새로운 영역 -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를 꼭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볼 것을 권했고 아예 영화를 아이맥스 영화관용으로 만들었다.-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원작 <듄>의 광팬이었다던 감독은 원작은 충실하게 살려냈을 뿐 아니라 우주의 느낌, 지구인의 그것과는 다른 자연과 문화에 대한 묘사를 개연성 있게 해냈다. 영화관을 나오며 '내가 아이맥스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지던 영화는 처음이었다. 2023년에 2편이 나온다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심지어 김영하 작가의 새 소설이라 읽었던 <작별인사>도 SF 장르여서 나는 어쩌다 그쪽을 조금 서성이게 됐는데 관련 글과 자료들을 읽다 보면 꼭 언급되는 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다.


한마디로 SF소설의 고전. 그렇게 다른 곳에  들어섰다가 한참을 돌아 돌아서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1932년에 발표된 SF소설이라니... 벌써 90년도 지났는데...'그 사이 과학은 얼마나 발전했으며 미래세계에 대한 상상도 얼마나 발전해 왔는데'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기우였다. 소설을 펼치자마자 작가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32년에 이런 미래를 그렸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포드 기원 632년,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사람이 직접 아이를 낳지 않는다. 엄마는 없다. 사람도 부화기에서 탄생한다. 계급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감마 계급부터는 동일한 난소에 동일한 남성 배우자를 결합시켜 대량의 일란성쌍생아 무리를 만들어 사회에서 일하는 존재로 만든다.


교육은 계급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일을 해야 하는 하층계급은 어릴 때부터 자연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도록, 심지어 전원을 증오하도록 훈련을 시킨다. <멋진 신세계> 속 알파와 베타 계급은 삶을 한껏 즐긴다. 특히 알파 계급은 우월한 신체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헬리콥터를 택시처럼 이용해 이동할 수 있고 이성 교제는 자유롭다. 여기서는 만인이 만인의 연인이어서 언제나 자유롭게 이성을 사귀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 몸이든 기분이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소마'를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 <멋진 신세계>에서도 조금씩 결이 다른 사람은 있어서 버나드는 대용 혈액에 알코올이 섞이는 바람에 알파 계급인데도 체구가 작다. 그래서인지 다른 알파 계급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같은 알파 계급 여성 레니나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버나드는 '야만인 보호구역'에 가게 되고 여기서 운명적으로 존을 만나게 된다. 한편  알파 계급이었던 엄마 린다에게서 태어난 존은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라면서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외톨이가 된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글을 배우면서 셰익스피어 소설을 즐겨 읽게 된다. 존과 버나드가 만나면서 이야기의 축은 존에게 넘어간다. 존은 버나드와 함께 야만인 보호구역을 벗어나게 되고 엄마 린다가 그리워했던 <신세계>에 오지만 기이함을 느낀다...


소설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편안하고 행복한 미래 사회의 명암을 그리고 있다. 편안하고 행복한 미래사회. 문제는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일 것이다.

<멋진 신세계> 속 사회 구성원들은 저마다 행복하다. 알파 계급은 모든 걸 다 가졌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생각만 하면 된다.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이라 해도 주어진 일만 하고 저녁에는 소마를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 사회 속에서 불행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존의 시선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없고 연인이라고 해서 서로에게 충실할 필요도 없다. 극장에 가면 말초적인 감각을 즐기게 해주는 촉감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 즐거운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으며 '소마'라는 수상한 약에 중독되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고 설레는 것들은 없는 사회다. 죽음이나 고통, 정열과 같은 개인의 경험과 감정은 어릴 때부터 철저히 통제된다. 사회구성원들이 문제를 삼지 않을 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뿐.


개인적으로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인류문화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기보다 -물론 거기서 출발하지만- '우둔한 대중'에 대한 풍자로 더 읽힌다.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서 시작됐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도 의심하지도 않은 채 '원래 그래'라고 여기며 끌려다니거나 몰려다니는 대중들.


현실의 많은 모습들이 소설과 겹쳐진다. 우리는 이미 <멋진 신세계>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건, SF소설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멋진 신세계>를 덮고 나면 진짜 고전이라 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너무 읽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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