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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Mar 09. 2022

가레스 존스 vs 월터 듀란티

우크라이나 기근 폭로 실화  영화 <미스터 존스>를 보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홀로도모르 : 대기근> 이다.


1930년대 초의 이 기근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300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로 인한 인구 감소는


 최소 1,100만 명에서 1,50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 기근이 더 끔찍한 것은 이 와중에도 소련은 곡식을 수탈해 갔고 우크라이나의 곡식이


스탈린의 자금줄로 쓰였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당시의 기근은 자연 기근이 아니라 인위적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화 <미스터 존스>는 우크라이나의 기근을 사실대로 서방에 알린 기자 가레스 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히틀러를 최초로 인터뷰 하기도 했던 가레스 존스 기자는 원래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영국 전 총리의 외교 고문으로 일하던 유능한 인재.

영화 <미스터 존스>속 장면들


스탈린이 체제를 홍보하는데 돈을 펑펑 써대는 걸 보고 그 재원을 줄곧 의심스러워하던 그는 스탈린을 인터뷰할 목적으로 프리랜서 기자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한다. 그러나 러시아에 도착하자 자신을 도와주기로 했던 기자가 강도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상적인 혁명 국가로 여겨지던 러시아에서 자신을 죄어 오는 감시와 통제의 손길 아래 놓인다.


스탈린에 대해 서방세계에 호의적 보도를 해 퓰리처 상까지 수상했던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 월터 듀란티의 기사들이 거짓임을 알게 된 가레스 존스 기자는 또 다른 기자로부터 우크라이나의 곡식이 스탈린의 황금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의 고향이 있기도 한 우크라이나의 기근 소문, 그리고 스탈린의 자금원이 궁금했던 가레스 기자는 로이드 조지 전 총리의 외교 고문이었던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촬영하겠다며 협조를 구하고 그렇게 소련 관리와 우크라이나로 향하던 차에서 홀로 내려 위험한 취재를 감행한다.


몰래 탄 우크라이나 서민들의 기차에서 무심코 오렌지를 먹다가 떨어뜨린 한 조각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예감한 그는, 우크라이나의 처참한 실태를 마주하게 된다.


굶주린 아이들은 그의 소시지가 든 가방을 노리고, 겨우겨우 찾아간 엄마의 옛 집에서 만난 친척 아이는 내놓은 고기가 의심스러워 무엇인지 물었다가 경악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짧은 기간으로 묘사됐지만 그의 우크라이나 취재는 실제로는 더 오래 꼼꼼히 진행된 것 같다. )


이렇게 굶주림에 시달리는 데 그나마 수확한 곡식은 소련으로 보내지는 현장도 생생하게 목격한다.


하지만 취재는 오래 가지 못했고 곧 소련 당국에 체포된 그는, 고국에 가서 진실을 말할 경우 영국 기술자 6명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협박을 받는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민한다.

이때 만난 조지 오웰이 "결과가 어떻든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듣는 것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라며  그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충고한다.


당시만 해도 소련의 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조지 오웰은 그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훗날 자신의 소설 '동물농장'으로 전체주의적 사회를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알린 가레스 존스의 기사


가레스 존스는 1933년 3월 31일,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 지에에 우크라이나 기근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을 실은 기사를 발표한다. 히틀러와의 첫 인터뷰, 그리고 히틀러의 위험성을 경고한 데 이어 이 기사까지 발표되면서 가레스 존스는 진정한 언론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는 가레스 존스의 활약상을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생생히 담으며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시선을 끄는 부분은 당시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지국장이었던 윌터 듀란티와의 대비.

모스크바에서 14년간 활동했던 그는, 당시 소련의 분위기를 완전히 왜곡해 전달하며 개인적 욕심을 채웠다.


우크라이나의 기근 의혹도 이 자에 의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반면 가레스 존스는 도청과 감시, 갖은 위협에도 '진실' 하나만을 향해 달려갔다.

영화적 묘사이긴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그 너른 눈발을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그의 모습은

우직하면서도 진실을 향한 무모하고 대담한,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우려스러운 동시에

존경스럽다. 


4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명석했던 그는 엄청나게 세계 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도 하다.

독일의 심상찮은 행보도 빨리 읽어내는가 하면 소련에 대한 의구심도 사실로 확인됐었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찮다고 판단해 여러 곳을 취재하던 중

내몽고에 들어가 강도단에게 붙잡혀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그의 나이 30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반면 소련을 선전하기 바빴던 월터 듀란티는, 잘못된 보도로 탄 퓰리쳐 상이 박탈되지도 않았고

오래 잘~ 살았다.


어쩌면 지금 한국에 가레스 존스 같은 기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윌터 듀란티 같은 기자가 많은 이유가 

이런 결말 때문이 아닌가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오랫동안 잊어 왔던 기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이렇게 가레스 존스가 목숨도 불사하고 밝히고 싶었던 '진실'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잘 만든, 모처럼 '피가 끓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 시청후 가레스 존스의 정보를 알아보다가 그를 위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불린다.


가레스 존스 사이트 -> www.garethjon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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