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그리고 이른 새벽에 들리는 경적소리
꿈에서 깨어나야만 할 때
이곳의 층간소음은 한국과는 다르다. 목재로 만들어진 천장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는 깨끗이 흡수하지만 바닥에 직접 닿는 발걸음 소리는 몇 배로 증폭해서 아래로 내려 보낸다. 아무런 말없이 움직이는 무언가가 머리 위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것을 막을만한 명분은 나에게 없다.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건물에 살기로 결정하고, 내 위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면서도 계약서에 서명한 나의 탓이다. 그러기에 꿈속에서 겪는 일들처럼 나는 그 소리를 통제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쯤 잠든 채로 소리가 들리면 꿈에 빠지고, 소리가 멎으면 꿈에서 깨기를 반복한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윗집 사람에 대한 막연한 악의가 되고, 두개골을 뚫고 들어와 뇌를 쿡쿡 찔러댄다. 이곳에 사는 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뇌는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들 사이로 도망친다. 아주 약간의 인과관계를 접착제 삼아 억지로 짜 맞춰진 밝은 미래를 만들고, 그 모습에 감탄한 뒤 바로 다음 미래를 찾으러 떠난다. 위층에서 소음이 들리는 한 나는 이 꿈에서 깨지 않을 것이고, 굳이 그 미래를 자세히 들여다보아 결함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도피이고, 정신에 해로우며, 중독성이 있다. 아주 잠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음에 놀라 꿈에서 깰 때, 그 정적이 내 마음을 옥죄어 올 때, 나는 빠르게 희미해져 곧 흩어져버리는 미래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다급히 찾는다.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허황된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짧은 평안을 찾는다. 깨어나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정도까지 파고들어 가서 그 안에 웅크리고 잠이 든다. 한국보다 해가 한 시간도 더 넘게 늦게 지는 한여름 태양 아래에서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다.
그럼에도 꿈에서 깨어나야만 할 때는 온다. 이곳에서 500 m 도 채 떨어지지 않은 기찻길을 지나쳐가는 화물열차가 내는 경적 소리가 창문을 뚫고 넘어온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건널목에 안전장치를 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기에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에도 경적소리가 나의 머리를 때려 나를 현실 속에 내팽개친다. 더는 참을 수가 없다. 기차가 다 지나쳐갈 때까지 몇 분 동안 그 소리가 이어지고, 나는 낭만적이고 해로운 그 꿈속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더는 몽상에 빠져있지 말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계획을 실행하라고 나 자신을 몰아세운다.
아무래도 공대에서 교육을 받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상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그런 순수함은 아닌 모양이다.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만, 그리고 그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오만함이 나를 일하게 한다. 잠을 편히 자지 못해 핏발이 선 눈을 한 채 이를 바드득거리며 나는 일요일 아침에 연구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