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콤플렉스
요즘 퇴근 후에는 바삐 어린이집을 간다. 대학원을 가장한 어린이집 말이다.. 진짜 어린이집에 다니던 그때는 세상을 하나하나 배워갔고, 요즘 다니는 어린이집에선 나라는 세상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간다.
수업시간에 실습하며 만든 작품을 가방에 넣고,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이가 부모님에게 "이거 내가 만든 거다아-! 어때? 멋지지?"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처럼 오늘 내가 발견한 마음에 대해 얼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라는 아빠, 나라는 엄마에게. 내일 또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아빠는, 그 마음을 기꺼이 더 오랫동안 듣고 싶어 한다. 하루 종일 나라는 집을 돌보기 바쁜 엄마는, 그 마음을 더 진지하게 들어주고 싶어 한다. 참 고마운 마음에 나라는 아이는 자신감이 한 뼘 한 뼘 자라난다.
지난번 수업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다시 나와 누군가에 더 깊이 나누고 싶다. 나는 이날 명상을 통해 나라는 씨앗을 상상하고 그게 나무가 자라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라본 상상 속 나무를 철사를 활용해 만들어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아래는 무의식의 체험 과정을 통해 발견한 이야기이다.
나라는 씨앗도 땅을 찾았다. 내가 도착한 땅은 보송보송한 질감, 그러나 푹푹 꺼져버리는 솜뭉치 땅이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땅을 좋다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씨앗이 자라나기엔 적절치 못하다. 힘을 받을 수가 없다. 일어날 수가 없다. 서려고만 하면 자꾸만 푹- 푹- 꺼져버린다. '차라리 여기에 쓰러져 그냥 머물러 있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라는 이 작은 씨앗 안에는 꽃피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를 편하게 만들면서도 힘들게 하던 솜뭉치는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뭉치고 뭉쳐지니 다른 땅만큼은 아니지만 이전보다는 단단해졌다. 솜뭉치들은 단단한 힘으로 나를 받쳐주었다. 솜뭉치들은 미안한 마음에 더 적극적으로 모여 힘껏 땅 위로 나를 밀어 올려주었다. 씨앗이 빼꼼하고 땅 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으앗, 조금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무서웠다. 나는 그냥 다시 솜뭉치 속에서 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솜뭉치들은 그래선 안된다며 너는 피어날 자격이 있다며 다시 한번 나를 힘껏 밀어 올려주었다. 나는 솜과 같은 유약함 속에 자라난 연약한 씨앗이지만, 솜뭉치들의 말을 믿고 나만의 여행을 기꺼이 가보기로 용기를 냈다.
씨앗은 오래 걸렸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무가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망설이고 눈치 보고. 때로는 하루를 두리번거리는 데에만 시간을 몽땅 써버리기도 했다. 시작이 늦고 과정은 느렸다. 그래도 나무는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더딜지라도 멈추지는 않았다. 나무의 뿌리에는 솜뭉치들이 붙어 있다. 받쳐주던 솜뭉치들은 다시 흩어져 나무의 뿌리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힘이기도 하고, 염증이기도 했다. 나무는 늘 눈치를 보느라 피곤해 몸이 가늘게 자라났다. 나무는 허리가 튼실해야 건강한 것이기에, 가는 몸을 가진 나를 주변에선 불안하게 쳐다봤다. 너는 언젠가 부러지고 말 거라며. 나라는 나무는 다시 위축되었다. 하지만 약한 몸에도 하나 둘 가지가 생겨났다. 비록 우리는 모두 가느다랗지만 소중한 친구들이다. 뻗쳐본 가지 위로는 풀들이 무성히 자라났다.
그런데, 풀이 아무리 많아져도 나무가 맺은 열매는 단 하나밖에 없다. 대찬 바람까지 자주 불어와 나무는 허리가 굽어져 버렸다.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힘이 이 나무에겐 있었다. 열매는 단 하나 밖에 없지만 그 어느 열매보다 새빨갛게 잘 익었다. 나무는 꼭 필요한 누군가가 찾아와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허리가 굽은 나무 곁엔 넓은 그늘이 만들어졌다. 사람에겐 그늘이 많다 그늘이 많다 하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가 되지만, 이 나무에게 있는 그늘은 누군가에 다정한 어둠이 되어주었다. 그 그늘 아래선 아이와 노인,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피곤한 사람들이 곁에 의자를 놓고 잠시 쉬어간다. 나는 허리 굽혀 바라다보며 솜뭉치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약한 나도, 비록 열매는 없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사람에게든 도움을 줄 수 있어 좋았다.
집으로 와서 이 나무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소파에 앉아 나무를 잠시 동안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의 허리를 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꼭 좋은 영향을 주어야만 하고, 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는 그런 마음에서 자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꼿꼿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바람의 저항에 저항해서 자세를 지키는 내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변에 오지 않으니, '내 주변에 그늘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대로 허리를 굽히고 굽혔다. 그것 또한 욕심이었다. 나는 이미 있는 친구들을 보지 못하고, 꼭 나의 존재를 크게 느껴줄 누군가가 와주기만을 오매불망 찾고 기다리고 있지 않았는지... 아! 새로운 발견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없었나 보다. 누군가에게 구세주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위험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감사하다. 이처럼 작지만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된 것이 꼭 신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나는 곧장 나무를 가져다가 나무의 허리를 펴주는 작업을 했다. 사방으로 팔을 뻗친 나무는 훨-씬 예쁘고 마음에 들었다. 되려 그늘도 여러 방향으로 넓어졌다. '조금 화려해 보이면 어때.'라고 생각했다. 억압되어 있던 내가 자유로워졌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것도 내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우리에겐 각자 자신다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훌륭한 도움이고, 가장 조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부디 나와 사랑하는 그들이 자신답게 어깨를 펼 수 있었으면.. 하는 씩씩한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