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Mar 19. 2021

윤석열

듣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라는 소제목처럼 이 내용은 모두 허구이자 제 상상입니다.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응원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이런 말을 듣고 싶다는 제 바람을 상상하여 적은 글입니다.)     


저는 오늘 27년간 몸담았던 검찰청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짧게나마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려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칼잡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 앞에는 검사(檢事)라는 본연의 한자가 아니라 칼을 쓰는 사람을 뜻하는 검사(劍士)라는 한자가 쓰이기도 했습니다.

검사(劍士) 윤석열. 다시 돌이켜봐도 저는 칼잡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꼭 덧붙여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정치 권력을 잡은 집단이나 힘을 가진 특정한 누군가의 명대로 움직이는 칼잡이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휘두르는 칼의 주인은 언제나 국민이셨고, 제 칼의 목표는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였으며, 그 칼을 휘두르는 범위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말이 과거 검찰이 자행한 수많은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되시는 국민 여러분이 계신다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27년의 검사 생활 중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보통의 검사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검찰총장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전국 모든 검사를 대표하는 검찰총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저는 그간 수십 년간 검찰이 행했던 잘못에 대해 검찰청을 대표해 국민 여러분 앞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공정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직책에 있는 검사가 사사로이 법을 이용하거나 집행해 국민 여러분에게 분노와 좌절을 드린 과거의 행동에 대해 모든 검사를 대신해 피해를 본 분들에게 사죄하며, 그러한 잘못들로 인해 법에 대해 불신을 초래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드립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비롯해 검·경 수사권 조정 또한 그동안 있었던 검찰의 잘못과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호 견제와 보완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국민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부패 범죄, 경제 범죄, 공직자 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 범죄, 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위의 6대 범죄는 국민 여러분의 일상과 관련된 범죄라기보다 거악(巨惡) 범죄의 확률이 높고, 위 범죄는 전문적인 수사와 기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검찰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하겠습니다. 


혹여 위의 6대 범죄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그때 다시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비록 검찰이 많은 잘못을 해왔지만, 다시 한번 검찰을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검찰청 직원 여러분. 검찰청을 떠나는 검찰청장이 아닌 법정을 떠나는 선배의 관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과거 불법과 부정을 행한 선배 검사들의 잘못을 외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잘못이 초래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임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는 검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법무연수원에서 정의의 여신상을 보며 각자가 다짐했던 초심을 잊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정의의 여신상이 안대로 눈을 가린 이유를 법정에 들어설 때마다 상기해주십시오. 더불어 법은 잘못을 저지른 이를 벌하는 목적에만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 법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 더 차가워야 하며, 삶에 힘겨워하는 이에게는 이 사회 최후의 안전망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자기추상 대인춘풍이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 검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고단할지라도 그 길 위에 여러분들이 서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 제 주변의 많은 의혹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떠나 사과드립니다. 돌이켜보면 과거 제가 더 잘 처신했으면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죄가 있다면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과거 검찰은 대상에 따라 다른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만약 저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라면 저 또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제가 잠시 빌려주셨던 칼을 내려놓는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정치에 뛰어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실 과거 정치에 뛰어들 기회는 꽤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있어야 할 곳이 검찰청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묵묵히 검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제 저는 당분간 푹 쉴 생각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 사회를 위해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검사 윤석열

작가의 이전글 문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