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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Dec 08. 2023

작은 학교에서의 생태교육이 필요한 이유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채널에서 ‘진화한국 1화’ 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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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작은 학교에서 삶이 필요한 이유는 일반적인 요즘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그래서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고 일부러 복닥거리는 생활이 지금의 부모세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의 부모님들은 7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까지의 연령대 이실 것입니다.

x세대부터 밀레니엄세대, z세대의 공통점은 디지털을 접했고 사용에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령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서 디지털기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상을 꽤 오래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온라인이 활성화되며 오프라인에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하는 등 관계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타인과의 스몰토크는 물론 상호작용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점점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럼 sns 같은 온라인 활동의 비중과 중요도가 높아지게 되고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강화시킵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참고로 우리의 자녀세대는 알파세대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성장한 디지털문화를 영위하며 유튜브를 보고 sns를 접하게 됩니다. 요즘 10대 아이들 사이에서 타인을 NPC처럼 대하며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다 들릴 것을 알면서도 마치 없는 사람인 듯 이러쿵저러쿵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아는 체 하면 우리끼리 한 얘기인데 왜 아는 척?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오히려 어이없어한다고 해요.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그래서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타인과의 상호작용기회, 사회기술습득기회 입니다. 작은 학교는 교실 내 학생수도 적지만 학년 당 학급수도 적기 때문에 성별은 물론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물론 그만큼 피할 수 있는 곳이 적으니 크고 작은 충돌들이 반드시 생깁니다. 이것은 성장과정에서 꼭 필요하고 겪어야 하는 건강한 충돌들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무와도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속상하고 화나는 일 없이 살면 참 좋겠지만, 나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닌 이상 타인과의 교류는 불가피합니다. 저는 작은 학교가 타인과의 상호작용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기술을 안전한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다양한 자극들이 넘쳐납니다. 유튜브, 쇼츠, 틱톡, sns 등 핸드폰만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아도 뇌에서 쉬지않고 도파민이 분비가 되도록 자극합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도파민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도파민을 떨어뜨리도록 작용합니다. 이것은 뇌가 고통을 느끼게 하게 우리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시 sns나 게임 같은 자극들에 빠져들게 되고 이것이 중독이 됩니다.


금식이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하면 우리의 뇌는 리셋이 되고 작은 자극에도 뇌가 도파민 분비를 시도하게 됩니다. 그럼 작은 자극에도 기쁨을 느끼고 쾌감을 느끼게 되지요. 우리의 뇌와 신체는 진화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온라인활동과 스마트폰 활용률이 높아지면서 신체활동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것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과밀학급이라면 쉬는 시간에조차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어려운 게 보통 학교의 현실입니다. 야외활동과 체험활동, 유연한 수업이 가능한 작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움직여 살아있는 실제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게 제공됩니다. 학교 뒤에 드리워진 산, 마을 골목길, 논과 밭, 학교 앞마당에서도 사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며 아이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자극합니다. 마을과의 연계교육을 통해 더욱 다양한 관계의 기회도 갖습니다.


완벽주의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삶은 결코 100퍼센트 완벽할 수 없어요. 그 간극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며 자존감을 지키고 자기효능감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과 자원이 우리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야기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진다거나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계속 좋은 말들을 해주고 이렇게 하면 좋겠어 저러면 좋겠어 발전적인 고민들을 하는 환경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모습을 통찰해 보며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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