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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l 14. 2019

옹녀, 성남에 문안이오

앙트레 콘서트: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오늘날 창극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를 묻는다면 ‘심청가’나 ‘춘향가’ 못지않게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역시 반드시 관람해야 할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창극 최초의 장기 공연, 꾸준한 객석 점유율 상승, 프랑스 파리 공연까지. 아직 창극을 경험해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매력적인 텍스트와 밀도 높은 음악, 그리고 섹슈얼리티. 창극의 역사를 새롭게 쓴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 인기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은 물론 프랑스 관객까지 섭렵하고, 매 공연 90퍼센트에 달하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관객을 끌어당긴 매력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흔히 알고 있는 ‘심청가’ ‘춘향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외설이라는 이유로 소위 ‘고전’으로 인정받지 못한 ‘변강쇠타령’을 오늘날에 맞게 재탄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재담꾼이라 할 수 있는 연출가 고선웅의 첫 창극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더는 불리지 않는 ‘변강쇠타령’을 희곡으로 다시 쓰면서 관점을 완전히 새롭게 틀었다. 과거에는 저평가된 이야기일지라도, 주인공 옹녀의 삶이 오늘날에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는 변강쇠란 영화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색골 남녀의 측면이 부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선웅이 새롭게 쓴 창극 대본은 ‘변강쇠’가 아닌 ‘옹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자신에게 씌워진 기구한 운명의 굴레를 극복해낸 강인한 생명력,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당차게 삶을 열어나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 변강쇠와 옹녀 외에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부각했다. 각양각색의 장승, 호색 할매와 순정 할배, 마을 아낙네 등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것 역시 극의 재미를 더한다. 이렇듯 다시 태어난 대본은 2014년, 차범석 희곡상 뮤지컬 극본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한 옹녀, 그 유쾌한 생명력

동시대의 관객과 만나게 된 ‘변강쇠타령’은 다채로운 우리 음악을 입고 그 매력이 배가됐다. 국악 그룹 ‘푸리’의 멤버이자 ‘바라지’의 예술감독으로 오래 활동했고 최근에는 음악가 정재일과 호흡을 맞추며 폭넓은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소리꾼 한승석(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이 작창과 작곡을 맡았다. 고선웅과 한승석, 동갑내기 두 예술가는 초연 당시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텍스트를 꼭꼭 씹어 넘기듯 섬세하게 배치하고 구성한 음악이 재미와 농밀함을 더한다. 판소리는 물론이고 민요와 정가, 비나리, 트로트,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넣음으로써 우리 음악의 흥을 한껏 살렸다는 평이다. “인생은 나그네길~”로 시작하는 최희준의 트로트 ‘하숙생’이나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면 왠지 모를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이 작품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


창극 작품 최초로 관람 제한 연령을 설정하는가 하면, 초연 당시 전례 없는 26일간 장기 공연을 진행하며 세간의 화제가 된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2014년 이래 매년 재공연을 거듭하며 짜임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에서 공연하고 2016년 4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를 거치며 국내외의 다양한 관객을 만난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다. 객석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 중이고 매진을 거듭하는 등 관객의 반응도 점

차 뜨거워지고 있다는 후문. 또한 초연 이래 꾸준히 음악적인 부분을 보강하고 의상 역시 일부 새롭게 제작해 작품의 면면을 새롭게 했다.


장단에 몸을 맡기고 배우들의 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즐기다가도 여기저기서 툭툭 던져지는 한 마디,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이야말로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뜨겁기론 이만큼 화끈할 수 없고 당차기론 이토록 호방할 수 없는 옹녀, 상부살에 역마살을 품고도 거친 세상을 홀로 헤치고 나서는 이 여인

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고리타분한 전통 예술이라 생각하던 창극이 얼마나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장르인지 이 작품을 통해 꼭 만나볼 것을 권한다. 친구, 연인, 모녀, 부부 누구나 함께 보면 더욱더 좋지만, ‘18금’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앙트레 콘서트: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일시 7월 19일 20시, 7월 20일 15시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031-783-8000


김태희 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국립극장


*성남문화재단 격월간 「아트뷰」 2019년 06+0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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