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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l 12. 2020

모던에서 컨템퍼러리까지

변화를 거듭해온 현대무용의 역사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 바람에 펄럭이는 스커트,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세상에 홀로 선 듯 춤추는 한 여성. 팔과 다리는 어떤 모양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상태였고, 얼굴에는 춤추는 기쁨이 가득했다. 현대무용의 시초로 기록되는 이사도라 덩컨은 당시 최고의 예술무용으로 여겨지던 발레의 모든 형식을 거부했다. 딱딱한 토슈즈를 벗어 던지고, 몸을 옥죄던 겹겹의 코르셋 의상 대신 품이 넉넉한 튜닉을 입고, 극장이 아닌 바닷가 같은 자연을 무대로 택했다. 발레의 인위적인 동작 대신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춤에 표현하고자 했다. 자신만의 철학과 감정을 담은 춤은 이사도라 덩컨의 고유한 춤언어가 됐고, 오늘날까지 현대무용의 시초로 기억된다.


19세기 후반, 발레는 유럽과 미주에서 그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발레가 갖고 있던 전통적인 권위와 체계에 대해 반발하며 20세기 초에 등장한 새로운 춤이 바로 ‘현대무용’이다. 이때까지 규정화된 유일한 춤 양식은 ‘발레’였으니 그 전통에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일인가.


오늘날 예술 사조가 정립된 후 이러한 춤이 비로소 ‘현대무용(Modern Dance)’라는 이름으로 정리됐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춤이라는 의미로 ‘뉴 댄스(New Dance)’ 혹은 표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표현적인 춤(Expressive Dance)’으로 불렸다. 그 근본 정신은 이사도라 덩컨이 그랬듯 ‘자유’에 방점이 찍혔다. 스펙터클 위주의 춤이 아닌, 예술가의 감정과 경험, 개인의 생각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이 춤의 목적이 된 것이다. 


무용에서의 현대성은 우선 대본과 이야기의 전개로부터 춤을 탈피하는 데서 시작됐다. 고전 발레의 뻔한 스토리, 이를테면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 같은 데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집중한 것이다. 플롯을 버리고, 인위적인 기교를 버리고, 장식적인 것들을 버리고 나니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이 드러났다. 초기 현대무용은 발레의 아름다운 동작이 아닌 원시적이며 거칠고 강한 동작을 선보였고, 솔리스트·군무로 나뉘는 고전 발레의 서열 제도를 무너뜨려 모든 무용수가 민주주의적 관계를 이루도록 했으며, 테크닉을 거부하고 몸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불리는 1세대(1930~1940년대) 무용가들은 현대무용이 발레처럼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가 남성 중심의 관객이 바라보는 존재로 표상됐다면, 여성 현대무용가들은 아름다운 포즈를 위한 춤이 아닌 자기 의지에 의한 움직임의 활기를 만들어 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춤에서도 여권주의적 관점이 강화됐다. 음악을 버리고 오롯이 자기 표현에 의한 춤을 보여준 마리 뷔그만, 감정에 충실한 움직임으로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마사 그레이엄, ‘낙하와 회복’ 테크닉을 통해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움직임 구성 원리를 찾고자 한 도리스 험프리가 이 시기를 이끌었다.


이어 등장한 2세대(1950~1960년대)는 초기 현대무용이 관객을 배제한 채 예술가 중심이었다는 점을 비판하고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잘 알려진 장소를 무대로 택하거나 팝·재즈 등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선택하는 등 노력을 기했다. 1세대와 달리 에릭 호킨스·호세 리몽·앨빈 에일리·폴 테일러 등 남성 무용수가 인기를 얻은 것도 이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앨빈 에일리는 흑인 무용가로 주목 받았으며, 현대무용과 재즈, 흑인 특유의 역동성을 결합한 작품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흑인의 신체를 감추려 하지 않고 더욱 매력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흑인 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고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내기도 했으니 당시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외에 독창적인 무대 장치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 얼윈 니콜라이, 춤과 미술 활동이 복합된 서정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 폴 테일러 등 이 시기의 무용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현대무용의 부흥을 이끌었다.


모던, 그리고 포스트모던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현대무용은 시대가 지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발레의 부흥기 이후 그에 대한 저항으로 현대무용이 탄생한 것처럼. ‘지금의 현대무용은 춤의 본질을 진정으로 반영하고 있는가?’ 초기와 달리 정형화된 현대무용에 던져진 이 질문은 1960~1970년대에 걸쳐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어 낸다. 


“구경거리에 대한 부정, 기교에 대한 부정, 마법과 가식에 대한 부정, 스타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매력과 탁월함에 대한 부정, 과장된 표현과 영웅주의 그리고 그 반대에 대한 부정, 관객을 현혹시키는 일에 대한 부정 (…)” 이 시기 이본 레이너가 부정의 예술 이념을 담아 주창한 성명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무용의 본질과 존재 방식에 대해 꾸준히 물음이 제기됐고, 그만큼 현대무용의 가능성은 확장을 거듭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미술가·음악가·시인 등 무용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이들이 무용수나 안무가로 작품에 참여하면서 전위적 실험이 본격화됐다. 해프닝·즉흥·이벤트·퍼포먼스와 같은 형식이 탄생했으며, 비무용적(non-dance)이고 반무용적(anti-dance)인 접근으로 무용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춤언어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초기에 ‘새로운 실험(new experiment)’이나 ‘극단적인 전위파(far avant-garde)’로 불린 이러한 실험은 점차 현대무용의 새 흐름으로 받아들여졌고, 1970년대 들어 ‘포스트모던댄스’로 정착하게 된다.


이로써 무용의 매체가 반드시 움직임이 아니어도 된다는 자율성이 인정되면서 순수하고 비표현적인 움직임으로서의 무용이 포스트모던댄스를 장악하게 된다. 테크닉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이 작품에 등장한다거나 일상의 움직임을 차용한 동작을 안무에 넣고, 더 나아가 안무의 개념 자체를 배제하고 즉흥을 벌이는 것이다. 전통적인 무용에 존재하던 요소를 해체하고 거부하는 이러한 경향은 특히 조형 예술을 중심으로 한 현대 예술과 결부됐고, 오늘날 관객이 많은 수의 무용 작품을 미술관이나 전시 공간에서 만나게 하는 발단이 됐다. 한편, 더 이상 어떤 춤이 무용 장르의 일부가 아니라 현대 예술의 하나로 여겨진 것도 이 시기에 변화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


‘표현’해야 한다는 의무를 벗게 된 춤은 보다 순수한 움직임으로 발전하게 되고, 춤을 위해 안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 자체가 춤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댄스는 20세기 말, 무용이 극장으로 회귀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면서 ‘동시대의 춤’이라 불리는 컨템퍼러리 댄스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포스트모던댄스의 종말, 그리고 ‘컨템퍼러리 댄스’라고 부르는 오늘날 춤 현장에선 국가간 경계가 낮아지고 전 세계의 문화적 간극이 좁혀지면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등장한다. 흐려진 국가적 경계를 넘나드는 다국적·다문화적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세계 어느 무용단이든 한국인 무용수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고, 다국적 무용 단체의 작품에서 무용수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내레이션을 하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춤 개념이 가리키는 범위가 확장되면서 작품의 양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러한 자세는 관객의 존재를 굳이 인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춤’을 선보이는 무용가들에게 원동력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극장이 필요하지 않으며, 움직임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예술 양식을 여럿 결합한 작품도 수두룩하다. 무엇이든 춤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춤으로 불린다.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의 대표작 <베로니크 두아노(Véronique Doisneau)>(2004)는 은퇴를 앞둔 무용수가 무선 마이크를 차고 등장해 자신이 실제 공연에서 어떤 배역을 맡게 되는지 춤을 시연하면서 관객에게 설명하는 렉처 퍼포먼스다. 무용은 연극과 달리 무대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고, 발레는 고고한 극장예술이라는 편견마저 산산조각 낸 작품이다. 호페쉬 섹터와 오하드 나하린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유럽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인정받았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안무가이자 런던 올림픽 개막식 무대를 맡기도 한 아크람 칸은 사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인도의 전통 춤 카탁을 자신의 움직임에 녹여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 주목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윌리엄 포사이스는 “더 이상 무용수들의 토슈즈 값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고백과 함께 클래식 발레에서 현대 발레로, 컨템퍼러리 댄스로 작품 스타일을 환골탈태하더니 최근에는 움직임에 미술과 기술을 적극 융합한 비주얼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게 무용이야?” 혁신을 거듭해온 역사처럼 컨템퍼러리 댄스가 가진 예측 불가능성은 자주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장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이 흥미롭고 새롭다. 훗날 ‘21세기의 현대무용’은 어떻게 기록될까. 마음껏 상상해도 좋다. 모든 것이 ‘춤’이 될 수 있으니.


김태희 무용평론가


*대한항공 기내 매거진 BEYOND 2020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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